(시론)‘사건’이 되는 순간, 극장은 다시 살아난다
2026-08-06 06:00:00 2026-08-06 06:00:00
영화 한 편이 공기를 바꾸는 순간이 있다. 최근이 그랬다. <호프>가 개봉한 뒤 한동안 우리 사회를 짓누르던 소음의 결이 달라졌다. 정치권의 정쟁은 하루도 쉬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정쟁을 자양분 삼아 거친 언어들을 확대재생산하기 바빴다. 그랬던 언어들이 어느새 영화에 대한 치열한 리뷰와 담론들로 교체되었다. 짙은 호불호의 갈림길 속에서 사람들은 앞다투어 관람을 인증하고 저마다의 감상과 해석을 풀어놓았다.
 
개별 작품에 대한 호오(好惡)를 넘어서는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문화 콘텐츠가 어떻게 우리의 일상에 침투하고, 감각을 흔들며, 끝내 생각의 방향까지 바꾸는가 하는 점 말이다. 누군가는 그 영화로부터 생기와 활력을 얻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불편함과 실망을 통해 자신의 미감과 가치관을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좋아함은 좋아함대로, 싫어함은 싫어함대로 의미를 남긴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감각의 차이를 사유의 차이로 확장시키고, 서로 다른 취향들이 충돌하면서도 하나의 공론장을 형성하는 것. 그 속에서 이해와 존중을 배우게 한다.
 
이제 바통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로 넘어갈 것이다.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대작들이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의 위로와 휴식을 건넨다는 게 실로 반갑다. 그런데 더 반갑고 중요한 일이 있다. 우리를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한다는 것이다. OTT 시대가 도래하며 ‘극장의 종말’을 고하는 와중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극장을 특별한 공간으로 여기는가 하는 질문이다. 오늘의 극장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왜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가.
 
이제 대중은 영화를 두 부류로 나뉜다.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와 ‘집에서 봐도 충분한 영화’. 멀티플렉스 극장이 아이맥스(IMAX) 스크린과 돌비 애트모스, 리클라이너 좌석 등의 고사양 환경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관객이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집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래서 ‘극장에 사람이 없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관객은 여전히 극장에 간다. 다만 새롭게 정의된 ‘극장용 영화’가 줄었을 뿐이다. 여기서 극장용 영화란 정확히 말해 ‘멀티플렉스용 영화’이다. 멀티플렉스 안에서 블록버스터가 아닌 영화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이미 그렇게 된 구조라는 걸 인정하지만 문화의 관점에서 이 현상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에 있기 때문이다. 
 
OTT 시대에도 극장은 휴식을 제공하고 공동체적 기억을 경험하게 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사진-뉴시스)
 
영화 생태계의 건전성이 훼손된 상태임에도 이 시점에 극장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도는 절실하다. 극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사라지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극장은 영화를 하나의 ‘사건(Event)’으로 승화시킨다. ‘사건’이란 파편화된 개인들이 하나의 어두운 공간으로 모여 같은 시간에 같은 화면을 바라보는 연대의 행위다. 타인과 함께 숨죽이고, 함께 탄성하며,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다는 공동체적 기억. 극장은 바로 그 기억을 만드는 장소가 된다. OTT의 선택이 경제적 효율성을 따진 계산이라면, 극장을 찾는 발걸음은 타인과 함께 사유하겠다는 대중의 강력하고도 의지적인 ‘문화적 선택’이다. 그것은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인 동시에,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태도의 표명이기도 하다.
 
아마 앞으로도 극장은 더욱 블록버스터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멀티플렉스의 상영표에 중저예산 영화나 독립예술영화를 찾기 어렵겠지만, 절망의 상황에서 찾는 희망은 어쩌면 소박한 데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리 곁에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것, 공동체적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관객이 많다는 것. 불이 꺼지고 스크린이 켜지는 한, 우리는 그 어둠 속에서 계속 희망을 확인할 것이다.
 
이승연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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