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속도’, 기업은 ‘손익’…석화 구조조정 ‘동상이몽’
시한 못 박은 정부, 압박 수위 연일 강화
“총대는 누가?” 손익 계산에 진전 더뎌
2025-09-22 14:51:52 2025-09-22 15:42:39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자 보다 못 한 정부가 직접 현장을 찾아 속도전을 주문하며 압박에 나섰습니다. 기업 간 협상이 지분·투자 분담 문제에 막혀 제자리를 맴도는 가운데, 정부가 중간점검과 최종안 제출 시한을 제시하며 압박 수위를 높인 셈입니다. 기업들은 투자비용과 수익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시간을 벌려는 모습입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10월 중간점검과 11월 초 최종안 제출을 목표로 현장 점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요 석화 기업들에 구조조정 방안 제출 공문까지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밑그림은 연 270만~370만톤 규모의 NCC(납사분해시설) 감축과 고부가·친환경 전환입니다. 맞춤형 패키지로 지원을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선 자구 노력, 후 지원’ 원칙은 기업이 따라와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정부는 2~3년 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지만 기업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더딥니다. 라인 재배치, 고객 전환, 인증 체계 보강 등 현장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업계 간 입장 차도 뚜렷합니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여전히 글로벌 범용 제품 과잉 공급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NCC 부담을 떠안는 것이 리스크로 작용합니다. 반대로 석화사들은 고부가 전환에 필요한 수천억원대 투자비용을 감안해 손익분기점을 치밀하게 따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여수의 GS칼텍스–LG화학, 대산의 HD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 울산의 SK지오센트릭–대한유화 등 잠정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지만, 지분율과 투자금 분담 문제에서 협상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와 석화사가 합칠 경우 누가 주체가 될지, 지분 구조로 할지 인수하는 방식을 취할지, 어느 정도 금액을 줄지, 인력은 어떻게 처리할지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며 “거론되는 업체들의 의사결정 진행 수준도 아직 완전히 초기 단계”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서로 안을 살짝살짝 꺼내면서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며 “연말까지 버티기 힘든 기업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누군가 먼저 총대를 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책을 내놓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어느 한 기업이 먼저 움직여 정부 지원 수준이 확인돼야 다른 기업들도 벤치마킹에 나설 것”이라며 “이 경우 막판 속도전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국내 최대 NCC 설비(626만5000톤)가 몰려 있는 여수는 구조조정의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GS칼텍스 지분 50%를 쥔 셰브런의 고위 임원이 최근 한국 정유·석화 부문에 대규모 투자 의사를 밝힌 만큼, 여수발 시그널이 업계 전반의 향배를 가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형평성을 둘러싼 불만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이달 말 발표될 철강 구조조정 시나리오에는 석화업계와 같은 ‘선 재편 방안’이 담기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철강과 달리 석화는 뒤로 밀려 차별받는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정부가 강도 높은 압박만 할 게 아니라 업종별 특수성과 투자 여건을 감안한 맞춤형 해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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