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불균형 현주소)②IMF 이후 다시 시험대 오른 한국 경제
킹달러·내수부진·글로벌 불확실성 발목
한계기업 속출…투자 여력↓취약성 커져
2025-11-18 16:18:27 2025-11-18 16:39:17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전은비 인턴기자] “지난해 업계 가동률이 18%였는데 올해 3분기에는 14%까지 하락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LG화학 여수 NCC 공장 모습. (사진=LG화학).
 
배조웅 한국레미콘 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은 최근 열린 ‘레미콘 경영혁신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배 회장이 말한 업황은, 건설 경기가 악화하면서 가동률과 출하량이 동반 하락하는 등 전통 제조업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반도체 등의 수출 호조로 지난 9월 한국의 경상수지는 29개월째 흑자를 이어갔지만, 그 이면에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반산업이 있습니다. AI·반도체 중심 성장 전략이 한국의 미래 동력이 되고 있는 반면에, 전통 제조업의 구조적 위기는 심화되는 이중구조’에 한국 경제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자 못 내는 좀비기업’ 역대 최대 
 
위기는 수치로도 드러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외부감사 기업 중에서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도는 좀비기업(한계기업) 비중은 17.1%로 집계됐습니다.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제때 갚지 못하는 기업은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입니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18%로 전년보다 0.6%포인트 올랐고 대기업(13.7%)은 1.2%포인트 상승했습니다. 특히 한계 상태가 3년 이상인 기업의 비중은 2023년 36.5%에서 2024년 44.8%로 올랐습니다. 
 
아울러 기업은행의 올해 3분기 대출 연체율은 1.00%로 2009년 1분기(1.02%)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고, 같은 기간 신한·국민·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중기 대출 평균 연체율도 0.53%로 2017년 1분기(0.59%)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경제가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할 시점에 오히려 금융 취약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전통 제조업의 위기는 기업 수 자체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가데이터처의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체 수는 2022년 58만6000개를 정점으로 지난해 50만4000개까지 떨어졌습니다. 최근 2년간 14%나 감소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닌 산업 기반 자체의 침식을 뜻합니다.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라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 있는 셈입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올해 들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415.48원(17일 기준)까지 치솟으면서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평균 환율(1394.97원)을 넘어선 데다, 내수 부진과 중국발 공급 과잉, 미국의 관세 압박까지 글로벌 경영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한국 경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30여년 만에 다시 ‘체질 개선’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IMF 이후 기업·금융·공공·노동의 4대 부문에 걸쳐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하며 금융 위기를 극복한 한국 경제는, 이제 산업 간 균형이라는 오래된 과제와 다시 마주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의 DNA에 남아 있는 불균형을 이제는 해소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일본 석화 구조조정 등 해법 거론
 
전문가들은 해외 구조조정 사례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석유화학 공급과잉 국면을 수차례 거치며 정부와 업계의 역할 분담을 조정해왔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참고 사례로 지목됩니다. 한국신용평가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버블 붕괴,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과정을 겪으며 과감한 설비 감축과 사업 재편을 통해 범용 제품 중심에서 스페셜티 케미컬(고부가 소재) 중심으로 산업 지형을 바꿨습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 주요 업체들은 NCC 규모를 줄이는 대신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첨단 소재, 의료용 폴리머, 화학 스페셜티 제품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고, 그 결과 올해 주요 일본 석유화학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석유화학 쇠퇴 속에서도 효율화에 성공한 것입니다. 
 
반면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올해 들어 뒤늦게 구조개편에 나서며 일찌감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일본과 비교되는 모습입니다. 정부는 지난 8월 주요 석유화학사 및 정유사들과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업계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을 맺고 산업 재편을 추진 중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산단 내 석화 설비를 통폐합하는 내용의 사업 재편안을 이사회에 올리는 등 구조조정에 진전을 보이는 곳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이는 ‘선(先) 자구 노력, 후(後) 지원’ 원칙만을 고수하면서 구체적 지원책이 미흡한 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구조조정의 고통을 기업의 자율적 결정에만 맡긴 채 정책과 금융지원책 실행은 더디기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실제 일본 정부는 제3차 구조조정기 당시 ‘1개 현에 1개 에틸렌 회사만 남긴다’는 식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기업의 의사결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에틸렌 감축 총량만 제시했을 뿐 방식 등에 대해선 기업 몫으로 남겨뒀습니다. 방향을 제시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할 선장이 없는 셈입니다. 
 
한편 정부 정책이 첨단산업에 집중되면서 산업 불균형을 되레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 조성 중인 ‘국민성장펀드’ 150조 원 가운데 약 50조원이 AI·반도체 분야에 투입될 예정인 까닭입니다. 미래 전략산업 육성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순 없지만,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해진 전통 제조업에 정책적 공백이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인 것입니다.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K-스틸법’의 본회의 상정과 통과가 불발된 것을 두고서도, 업계에서 정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투자 흐름의 양극화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액은 83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3% 증가했지만, 이 가운데 82%가 대기업 몫이었습니다. 반도체·자동차 등 일부 산업은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반면 철강·석유화학은 투자 여력이 급격히 줄어 기술 경쟁력이 약화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습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반도체 등 특정 산업으로 자원이 몰리면 전통산업 경쟁력 약화와 고용·임금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며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과 인력 확보, 작업 환경 개선을 지원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 생태계를 강화하는 것이 정부의 핵심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전은비 인턴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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