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마Ⅱ(은퇴한 사람들의 해외 마을 만들기)는 단순한 은퇴자 주거 모델이 아닌,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와 개인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국가 전략입니다. 해외 거점에 형성될 은퇴자 커뮤니티는 항공·관광·헬스케어·부동산 산업을 잇는 신수요를 만들고, 동시에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의 교두보가 됩니다. 거점도시는 결국 한국형 개발협력(ODA), 글로벌 공급망 전략, 문화 교류의 실제 인프라가 됩니다. 은사마Ⅱ의 1차 거점은 라오스 비엔티안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두 도시 거주자들의 기고를 통해 이 전략의 향후 전개 방향을 살펴봅니다. 본 기획에서는 한국 기업의 극동 러시아 진출 교두보이자 항만·물류·관광·에너지 산업이 교차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펼쳐지는 한러·유라시아 교류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편집자 주)
캄차카에서 알래스카까지, 지도가 건네는 상상
저는 가끔 사무실에서 한가할 때면 세계지도를 유심히 바라봅니다. 지도 위에 펼쳐진 여러 지역들을 바라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역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국 인디언들은 정말로 극동 러시아의 캄차카반도에서 점선처럼 이어진 작은 섬들을 따라 알래스카를 거쳐 수만 년 전 오늘의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해 간 것일까요? 이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었을까요, 아니면 외부에서 밀려온 적들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요? 지도 앞에 서면 이런 생각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곤 합니다.
연해주 바로 옆 바다에는 사할린 섬이 있고, 그 사할린 아래에는 일본의 홋카이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 역시 작은 섬들이 점선처럼 이어져 캄차카반도와 연결돼 있는 모습이 지도에서 확인됩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러시아에게 일본도 결코 먼 나라가 아닙니다. 베링해의 알류산열도와 오호츠크해의 쿠릴열도를 천천히 바라보면 이 지역의 지리적 연결성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시선을 중국 쪽으로 옮기면 가장 먼저 아주 가까이에 지린성의 옌볜 조선족자치주가 눈에 들어옵니다. 러시아에서는 '고려인', 중국에서는 '조선족'으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왜 같은 뿌리를 둔 이들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름이 다를 뿐 그 안에 담긴 삶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하얼빈에서 우수리스크까지, 기억을 잇는 길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전경. 한국, 중국, 일본을 잇는 극동 교역의 관문이자 연해주 한러 교류의 중심지다. (사진=위키미디어)
조금 더 왼편으로는 헤이룽장성의 공업 도시 무단장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하얼빈이 자리합니다. 하얼빈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러시아에 의해 개발되고 성장한 도시였기에 지금도 곳곳에서 러시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하얼빈은 안중근 열사의 독립운동 성지로 더욱 깊이 기억되는 곳입니다.
많은 한국 방문객들이 처음 듣고 놀라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안중근 열사가 하얼빈에서의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상당 기간 러시아 연해주에 머물렀고, 그 준비 과정 전반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이가 바로 초창기 고려인이었던 러시아 시민 표트르 최, 한국 이름으로 최재형 선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많은 분들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저는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연해주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다음으로 가장 많이 방문하는 도시는 우수리스크입니다. 우수리스크는 연해주에서 가장 큰 농업 지역이자 대량의 농산물이 유통되는 중심지입니다. 오랜 기간 이 지역의 농업은 고려인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개발되고 성장해왔습니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여러 농업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진출해 지금까지도 활발히 사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더욱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홋카이도가 쌀과 감자, 옥수수, 밀, 콩 같은 주요 곡물은 물론 각종 채소류와 과일류까지 최상품 산지로 평가받는 것처럼, 위도상으로 거의 같은 높이에 위치한 연해주의 농업 역시 기후와 토양 조건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크게 성장할 여지가 충분해 보입니다.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북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께 꼭 한 번 들러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이 우수리스크에 오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바로 고려인 문화센터와 최재형 선생의 생가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은 채 우수리스크 외곽 도로를 한참 달려가기도 합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조금만 더 들어가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벌판과 언덕이 나타나는데, 그 언덕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강줄기를 따라 지평선 끝까지 이어진 광활한 땅이 펼쳐집니다. 그곳이 바로 수천 년 전 한국 고대국가 발해의 터전이었다고 전해지는 장소입니다. 이처럼 표지판 하나 없는 이곳에 발해의 숨결을 느끼려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옵니다.
제 한국인 친구의 딸도 학생 시절 이곳을 방문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의 유럽식 건축물이나 멋진 레스토랑, 카페보다 발해의 옛 터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우수리스크의 언덕이 가장 인상 깊은 장소로 남았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느꼈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는 말도 함께 전해주었습니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의 고려인 역사관. (사진=뉴시스)
고려인과 한국인, 그리고 발해가 남긴 이름들
러시아 일반 국민들에게 한국인은 크게 두 부류로 인식됩니다. 첫 번째는 '까레이츠', 즉 고려인입니다. 고려인에 대한 첫 번째 인상은 끈질긴 생명력과 부지런함입니다. 태생적인 가난과 외국인으로서의 불안정한 신분,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 삶의 불확실성을 오직 부지런함으로 극복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러시아 사람들은 고려인들을 깊이 존중하며 같은 국민으로 받아들입니다.
미국의 인디언들이 어떤 이유로 먼 대륙까지 건너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인들은 저마다 절박한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아 연해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고려인들이 이 땅에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큼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의 한국인, 러시아식 표현으로 '유즈노이 까레이츠', 즉 남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만나온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고려인들보다도 더 빠르고, 더 치열하고, 더 부지런하며 무엇보다 매우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러시아와 인연을 맺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도 이제 대략 35년이 흘렀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 탓인지, 고려인들이 160년 동안 쌓아온 성취보다 지난 35년간 현대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국력 역시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저는 구소련이 러시아로 바뀌던 격동의 시절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중국, 일본과 여러 사업을 하며 많은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주도해 러시아에서 이뤄낸 성과들은 제 인생 여정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러시아는 중국, 일본과도 항상 협력과 공생의 길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연해주 일반 시민의 시선에서 바라본 제 개인적인 생각은 다릅니다. 한국인들이야말로 우리와 가장 성향이 잘 맞고,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가장 적절히 보완해줄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라로 느껴집니다.
까레이츠로 불리는 고려인, 유즈노이 까레이츠로 불리는 한국인, 그리고 더 오래된 역사 속 발해의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이 저희 연해주 시민들에게는 오랜 친구였고, 때로는 동지였으며, 지금은 가장 소중한 협력의 파트너입니다.
이제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모든 친구분들이 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라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서로 힘을 모아 더 많은 협력의 시간을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봅니다.
유리 시바첸코 루스퍼시픽그룹 컴퍼니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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