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며 글로벌 자금이 금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긴장과 통화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달러와 미 국채를 피하려는 이른바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인식이 확산되자 국제 금값은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5000달러선을 돌파했습니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와 달러 약세 흐름이 맞물리며 금값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6일(한국시간) 오전 8시4분 기준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전장 대비 0.75% 오른 온스당 5019.85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시각 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도 0.84% 상승한 5020.60달러를 나타냈습니다. 국제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선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금값 상승 속도도 이례적입니다. 금 가격은 지난해 10월 초 사상 처음 4000달러를 돌파한 이후 약 3개월 만에 1000달러가 추가 상승했습니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은 65%로 1979년 이후 최대폭이며 올해 들어서도 상승률은 16%에 달합니다.
이번 금값 급등은 지정학 불안과 미국 정책 혼선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중동 지역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통상 발언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웠다는 평가입니다. 그린란드 병합 가능성 언급과 캐나다에 대한 고율 관세 경고까지 더해지며 미국과 주요 동맹국 간 갈등 우려도 다시 부상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연방준비제도(Fed)를 향해 금리 인하 필요성을 거듭 언급하고 있습니다. 차기 연준 의장 인선을 둘러싼 관측이 이어지면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시장의 경계심도 커졌습니다. 연준의 정책 판단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통화시장에서는 달러 약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최근 97선까지 하락했습니다. 미국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달러 강세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글로벌 자금은 달러와 국채보다 금과 은 등 실물 안전자산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관측됩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의 골드뱅킹 잔액은 이달 22일 기준 2조1494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달 말보다 2198억원 늘며 한 달 새 11.4% 증가했습니다. 골드뱅킹 잔액은 지난해 3월 1조원을 처음 넘어선 이후 10개월 만에 두 배로 확대됐습니다. 국제 금값 상승이 본격화된 지난해 6월 이후에는 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물 금 투자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5대 시중은행이 이달 1일부터 22일까지 판매한 골드바는 716억7311만원어치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지난달 월간 판매액의 두 배 수준입니다. 같은 기간 판매된 골드바 중량은 286kg으로 전달 판매량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일부 은행은 수급 불안과 가격 급등 부담으로 1kg 중량 골드바 위주로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최근 금값 상승을 단기 급등이 아닌 자산 선호 구조 변화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지정학적 충돌과 통화정책 불확실성, 달러 신뢰 약화가 동시에 작용하는 국면에서 금이 다시 핵심 방어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금값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말 금 가격 전망치를 기존 온스당 4900달러에서 5400달러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금값 강세는 은 시장으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제 은값은 지난 23일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1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은 가격은 150% 넘게 상승했습니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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