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지난달 국내 외화예금이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업황이 개선되면서 달러화와 유로화 중심으로 기업 경상자금이 늘어난 데다,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외국인 자금도 증가한 데 따른 것입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 하면서 고환율 기조에 따라 달러 보유를 늘린 경향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부가 고환율 방어를 위해 기업들에 보유한 달러를 팔아달라고 당부했음에도 기업도, 개인도 '달러 사재기' 열풍이 이어진 것으로 풀이됩니다.
작년 12월 외화예금 158.8억달러 ↑… 역대 최대 폭 증가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12월 중 거주자 외화예금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외국환은행의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은 1194억3000만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전월보다 158억8000만달러 증가한 규모로,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6월 이후 역대 최대 증가 폭입니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내국인과 국내 기업,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 등이 보유한 국내 외화예금을 의미합니다. 앞서 국내 외화예금은 지난해 9월 5억5000만달러, 10월 52억6000만달러로 감소세를 지속하다가 같은 해 11월 17억2000만달러로 증가 전환하며 반등했습니다. 12월에도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두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습니다.
통화별로 보면 달러화 예금이 959억3000만달러로 전월보다 83억4000만달러 늘었습니다. 한은은 "외국인의 국내 기업 지분 취득 자금 유입과 수출입 기업의 경상대금 수취, 증권사의 투자자 예탁금 예치 등이 증가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출 대기업이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 중 상당액을 예금에 예치하고, 한국 투자자의 미국 주식 투자가 늘면서 증권사 달러 예금도 증가했다는 의미입니다.
유로화 예금은 117억5000만달러로 전월 대비 63억5000만달러 증가했습니다. 일부 외국계 기업들이 연초 지급 예정인 경상대금을 일시적으로 예치한 영향이 컸는데, 증가 폭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크게 늘었습니다. 엔화 예금도 증권사의 투자자 예탁금 예치 등으로 90억달러를 기록하며 한 달 새 8억7000만달러 늘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기업 외화예금 '역대 최대'…올해 들어선 '달러 사재기' 주춤
예금 주체별로는 기업 외화예금 잔액이 1025억달러로 전월보다 140억7000만달러 증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개인 외화예금 역시 18억2000만달러 늘어난 169억30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은행별로는 국내 은행 예금 잔액이 1016억달러로 127억6000만달러 늘었고, 외국은행 국내 지점(외은 지점)은 178억3000만달러로 31억3000만달러 증가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위협하자 수출기업 등에 달러를 보유하지 말고 매도해달라고 당부했음에도 달러화 예금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수출기업과 수입 중소기업이 환율 상승 가능성에 대비해 외화를 현물환 시장에서 매도하지 않고 은행 외화예금으로 쌓아두는 경향이 두드러지자, 같은 해 11월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기아 등 기업 경영진을 만나 "외환 수급 개선을 위해 긴밀히 협조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달 국내 외화예금이 증가한 배경에는 환율 추가 상승 기대를 바탕으로 달러 매수세가 이어진 것으로 풀이됩니다. 외화예금은 통상 달러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증가합니다. 다만 새해 들어서는 달러 사재기가 다소 주춤한 것으로 보입니다. 외환당국이 지난 연말부터 환율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기업들이 보유 달러를 일부 매도하고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도 다소 진정됐기 때문입니다.
실제 정부는 최근 시중은행 외환 담당자들에게 환전 우대 서비스 등 환투기를 자극할 수 있는 마케팅 자제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환율을 틈탄 환치기와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해 범부처 특별 단속반도 가동했습니다. 은행권 역시 당국의 기조에 맞춰 트래블 카드나 통장 관련 이벤트를 축소하고, 달러 예금 금리를 낮추는 등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22일 기준 달러 예금 잔액은 632억483만달러로, 석 달 만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국내 외화예금이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한 가운데,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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