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외환당국의 강력한 안정화 조치에 힘입어 환율이 일시적으로 하락한 사례도 있었지만, 곧바로 상승세로 복귀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의 환율 불안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외환시장을 둘러싼 구조적 환경 변화에 기인한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정부와 관계 당국 역시 보다 구조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직접 개입 역시 병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두개입은 무엇보다 당국의 분명한 의지를 시장에 전달할 때 효과가 크다. 실제로 수차례의 구두개입에도 불안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지난해 12월24일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정책 실행 능력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나온 직후 환율이 한동안 안정세를 보인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 정책의 방향성이 지나치게 명확할 경우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의 환헤지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민연금은 기금 규모가 워낙 커 외환 수급에 구조적 영향을 미치는데, 환헤지 정책이 비탄력적이고 일관된 방향으로 인식된 데 따른 문제이다. 그 결과 원화 약세 국면에서 이를 전제로 한 베팅이 상대적으로 유리해 보이는 환경이 형성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융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행동이 환율 기대를 고정(anchor)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는 정책의 투명성 자체라기보다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 결여된 정책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전략적 모호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관련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환헤지를 수행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환헤지의 시점과 수준을 시장이 쉽게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런 전략적 모호성은 현시점에서 통화정책에도 요구된다. 내외 금리차는 환율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한미 간 금리 역전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점이 최근 환율 불안의 주요 배경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국제 자본 이동이 고도화되고 금융시장 간 연계성이 강화되면서, 금리 차이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최근 일본과 대만이 낮은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달러 대비 통화가치 하락을 경험한 사례 역시 이 분석과 맥을 같이한다.
금리 차이가 장기간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시장에 자리 잡을 경우, 원화 자산의 상대적 매력은 낮아지고 원화 약세에 대한 기대는 강화된다. 이는 외환 수급을 구조적으로 달러 매수·원화 매도 방향으로 기울게 만들며, 환율 상승 압력을 누적시킨다. 특히 “통화당국이 금리를 올릴 수 없다”는 확신이 시장에 형성될 경우, 원화 약세에 대한 일방적 기대는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5.2원 내린 1440.67원에 마감했다. (사진=뉴시스)
그동안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문구는 비교적 명확한 방향 신호를 시장에 제공해왔다. 특히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하는 표현은 향후 정책 경로에 대한 기대를 일정 부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2026년 통화정책 운용방향’(2025.12.23.)에서는 “기준금리는 향후 (…)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가 인하 여부 및 시기를 결정한다”고 밝히며 인하 기조를 시사했다. 그러나 이런 명시적 가이던스는 경제 여건이 빠르게 변화하는 국면에서는 정책 선택의 폭을 제약하고, 시장의 일방적 베팅을 유도할 위험도 함께 내포한다.
2026년 1월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는 ‘금리 인하’ 문구를 삭제했다. 이는 고환율이 물가의 상방 리스크로 작용하는 가운데 최근 성장세 개선 및 금융 불균형 우려 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조치는 정책 방향을 사전에 특정하지 않고, 인상·동결·인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는 전략적 모호성을 강화한 것으로도 볼 여지가 있다. 일부에서는 미래 금리 경로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축소됐다고 비판하지만, 금융시장 기대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경계하고 정책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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