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출근한 직원에게 첫날부터 혼자 현장을 맡기는 회사는 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 공부하고 자격증을 쌓았어도, 교과서가 담지 못한 변수들이 실제 일터에는 넘쳐나기 때문이다. 입사 후 일정 기간 현장을 익히고, 실수를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과정. 우리는 그것을 '견습(見習)'이라 부른다. 지금 공장과 물류 창고에 배치되기 시작한 피지컬 인공지능(AI) 로봇이 정확히 이 과정을 거치고 있다. 가상 환경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훈련을 마쳤어도, 현실에서의 첫 출근은 여전히 견습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견습을 누가,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피지컬 AI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
2025년 11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Spartanburg) BMW 공장. 약 10개월간 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일하던 로봇 한 대가 임무를 마치고 본사로 돌아갔다. 이 로봇 '피규어 02(Figure 02)'는 월~금 하루 10시간씩 판금 부품을 집어 용접 고정 장치에 올려놓는 작업을 반복하며 9만개 이상의 부품을 옮겼고, 총 1250시간을 가동해 3만대 이상의 BMW X3 차량 생산에 기여했다.
그런데 이 로봇의 진짜 성과는 생산 실적이 아니었다. 고장 기록이었다. 제조사 피규어 AI(Figure AI)는 팔뚝이 가장 취약한 부위였다고 공개했다. 사람 크기의 팔 안에 세 방향으로 구부러지는 관절과 열 관리 부품, 움직임에 따라 늘어나는 배선을 한꺼번에 집어넣은 것이 무리였다. 반복 동작이 내부 회로와 배선에 누적 손상을 일으킨 것이다. 이 고장 데이터는 고스란히 차세대 모델 '피규어 03(Figure 03)' 설계에 반영됐다. 손목 내부 분배 회로를 없애고, 각 모터 제어 장치가 메인 컴퓨터와 직접 통신하도록 구조를 단순화했다. 현장에서 부서진 팔뚝 하나가 다음 세대 로봇의 손목 구조를 바꾼 것이다. 실수를 통해 설계를 수정하는 것, 이것이 로봇 견습의 작동 방식이다.
같은 시기, 미국 조지아주의 한 물류 창고에서는 로봇 견습의 또 다른 데이터가 쌓이고 있었다. 세계 최대 계약 물류 기업 GXO(GXO Logistics)의 조지아주 물류 창고에 배치된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로봇 '디짓(Digit)'이 2025년 11월까지 누적 10만번째 운반 상자를 옮겼다. 자율 이동 로봇이 실어다 준 상자를 집어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작업이었다. '피규어 02'와 달리 '디짓'에게는 눈에 띄는 고장이 없었다. 대신 다른 종류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마다 달라지는 창고 안 조명, 제각각인 상자의 크기와 놓인 각도, 좁은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 교과서에 없는 이 변수들을 10만번 넘게 통과하면서, 디짓은 이 창고가 자신에게 처음 맡긴 임무를 비로소 완수했다. 마치 견습 사원이 수백 번의 실전 끝에 "이제 혼자 맡겨도 되겠다"는 말을 듣는 것처럼, 로봇도 현장에서 반복을 거쳐야 그 자리를 인정받는다.
디짓을 운용한 어질리티 로보틱스는 이 원칙을 분명히 했다. 로봇이 더 많은 현장으로 나아가려면,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실제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먼저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증명은 발표회장이나 시연 영상이 아니라 실제 생산 현장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업이 로봇을 더 많은 현장에 투입하려면 먼저 안전을 증명해야 하고, 안전은 현장의 시간이 쌓여야만 증명된다. 로봇에게도 견습이 필요한 이유다.
피규어 02가 고장을 통해 다음 설계를 바꿨고, 디짓이 반복을 통해 현장의 인정을 받았다. 방식은 달랐지만, 둘 다 현장에 나오기 전까지는 그 데이터를 얻을 수 없었다. 두 사례는 같은 진실을 가리킨다. 피지컬 AI의 현장 투입은 기술의 완성 선언이 아니라 데이터 수집의 시작이다. 가상에서 수백만번 훈련한 로봇이 실제 공장과 창고에 나온 순간, 진짜 훈련이 비로소 시작된다.
이 사실은 학문적으로도 뒷받침된다. 캐나다 구엘프대학교(University of Guelph) 리준페이(Junfei Li)·양사이먼(Simon X. Yang) 연구팀이 2025년 학술지 <인텔리전트 로보틱스(Intelligent Robotics)>에 발표한 논문 「디지털 트윈에서 구현된 인공지능으로(Digital twins to embodied artificial intelligence: review and perspective)」는 현실 환경을 가상으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이 로봇 훈련의 비용과 위험을 크게 줄여준다고 평가하면서도 분명한 한계를 명시한다. 시뮬레이션은 현실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완전히 재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상이 아무리 정교해도, 현장 투입 자체가 훈련의 마지막 단계이자 시뮬레이션이 끝내 대신할 수 없는 교실이 된다. BMW의 공장과 GXO의 창고가 바로 그 교실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교실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BMW의 사례는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 피규어 02는 처음부터 이미 높은 수준의 자동화를 갖춘 차체 공정에 배치됐다. 이 구역의 작업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공정을 도입한 경험이 풍부했다. 낯선 변수를 최소화해 견습 초기의 실패 확률을 줄인 의도적 선택이었다. BMW는 초기 테스트 단계부터 생산 IT 인프라, 산업 안전, 공정 관리, 현장 물류 부서를 모두 참여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고 밝혔다. 로봇 한 대를 현장에 들이는 일이 기술 부서만의 결정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또한 프로젝트 팀의 사전 소통이 현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작업자들의 수용을 이끌어냈다고도 덧붙였다. 앞으로 병원, 학교, 복지시설, 공공 공간에 피지컬 AI가 들어올 때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어떤 공정에, 어떤 순서로, 누구의 감독 아래 투입할 것인지를 기술 도입 이전에 사회가 먼저 논의해야 한다. 견습 환경의 설계는 로봇 제조사만의 몫이 아니라 그 공간을 함께 쓰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 설계에는 시민의 역할도 있다. 견습 사원을 제대로 키우려면 그의 실수를 기록하고 원인을 따져 묻는 사람이 필요하듯, 피지컬 AI를 제대로 정착시키려면 로봇이 어떤 조건에서 실패하는지를 알고 질문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디짓이 10만번의 반복 끝에 무엇을 통과했는지, 피규어 02가 공장에서 팔뚝이 부러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 홍보 영상 속 매끈한 성능 뒤에 반드시 보이지 않는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이 피지컬 AI 시대가 요구하는 시민의 감각이다. 기술을 수용하는 것과 기술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소비자의 태도이고, 후자는 시민의 태도다.
처음 출근한 직원에게 견습의 시간을 주는 것은 그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교과서 밖의 현실이 언제나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피지컬 AI도 다르지 않다. 가상에서 수백만 번 훈련을 마친 로봇도 현실 앞에서는 여전히 견습생이다. 좋은 견습이 좋은 로봇을 만들고, 좋은 로봇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 그 견습을 제대로 설계하고, 옆에서 함께 기록하고, 실패를 숨기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것. 피지컬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제다.
최홍규 연구위원(EBS)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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