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서 태어난 생후 3개월 정도의 늑대 새끼가 대전 오월드 동물원 사육장에서 산책하고 있다.
지난 8일 대전 오월드를 탈출했던 늑대 '늑구'가 9일 만에 생포돼 동물원에 돌아왔습니다. 대전 보문산 자락의 험한 지형 속에서 포획망을 피해 다니며 보여준 늑구의 끈질긴 생명력은 온 국민을 긴장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야생의 생명력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9일이라는 시간은 늑구에게는 자유였겠지만, 우리에게는 이 땅에서 사라진 늑대의 존재를 뼈저리게 되새기게 한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반도에서 늑대의 시계는 1967년 경북 영주에서 멈춰 섰습니다. 당시 영주 소백산에서 사로잡힌 새끼 늑대들은 대구의 사설 동물원을 거쳐 창경원과 과천 서울대공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야생의 제왕이었던 그들은 좁은 우리 속에서 노쇠해갔고, 1996년 마지막 한 마리가 숨을 거두며 토종 늑대의 직접적인 혈통은 끊어졌습니다. 그 단절된 시간을 잇기 위해 1999년 봄, 고 김수일 박사와 필자가 직접 중국 하얼빈으로 날아가 한반도 늑대와 혈통이 같은 만주산 늑대 4마리 참랑, 애랑, 늑돌이, 늑순이를 들여왔던 그 기억이 늑구의 귀환과 함께 다시 선명해집니다.
우리는 흔히 늑대를 가축을 해치고 때를 지어 사람에게 대드는 무자비한 맹수로만 여깁니다. 하지만 늑대는 생태계 전체를 치유하는 '최고의 의사'입니다. 이를 전 세계에 증명한 사례가 바로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입니다. 1920년대 미국 정부가 늑대를 완전히 소탕하자, 천적이 사라진 사슴(엘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풀과 나무를 닥치는 대로 뜯어 먹었습니다. 울창했던 숲은 황폐해졌고, 강가의 버드나무가 사라지자, 비버가 떠났으며 생태계는 붕괴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1995년, 미국은 캐나다에서 늑대들을 들여와 방사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결과는 기적이었습니다. 늑대가 나타나자 사슴들은 포식자를 피해 숲 깊은 곳으로 이동했고, 강가에 다시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식생이 회복되자 새들이 돌아오고 비버가 다시 댐을 지었으며, 심지어 강물의 흐름까지 바뀌어 생태계 전체가 생명력을 되찾았습니다. 늑대라는 상위 포식자 한 종의 복원이 전체 생태계를 살려내는 '트로픽 캐스케이드(Trophic Cascade)'의 마법이 일어난 것입니다.
멸종위기종 늑대를 대량 사육하고 있는 중국 헤이륭장성 하얼빈 동물원에서 늑대 수컷이 사람을 노려보고 있다.
늑대는 맹수이기 이전에 지독한 '가족주의자'입니다. 평생 한 마리의 암컷과만 짝을 이루는 순애보, 사냥해온 고기를 새끼들에게 먼저 양보하는 지극한 부성애, 그리고 병든 동료를 끝까지 보살피는 공동체 의식은 늑대만의 고결한 성품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호랑이 없는 골에 늑대가 선생 노릇 한다"고 했던 것은 늑대가 단순히 무서운 짐승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는 영리한 조절자임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전설과 속담 속에서 늑대는 때로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숲의 균형을 맞추는 영물이었습니다. 우리가 늑대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살생의 기술이 아니라,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무리를 유지하는 끈끈한 연대입니다.
영주에서 잡혀 동물원을 전전하다 사라진 마지막 토종늑대의 슬픈 눈망울은 이제 과거가 되었습니다. 대전 오월드에서 다시금 무리를 이룬 늑대들과, 9일간의 외출 끝에 돌아온 늑구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의 일부를 오려내 버린 대가가 무엇인지를 말입니다. 전 국민의 관심이 이어지자, 일부는 늑구 마케팅에 현안입니다. 이 땅에 늑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1999년 하얼빈에서 한국으로 오던 비행기 화물칸 안, 좁은 케이지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던 늑대들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늑대는 단순한 전시 동물이 아닙니다. 미국 옐로스톤의 기적처럼, 언젠가 우리 강산에서도 늑대의 울음소리가 생태계 회복의 건강한 신호탄으로 울려 퍼질 날을 꿈꿔봅니다. 늑구의 무사 귀환이 그저 다행스러운 해프닝을 넘어, 우리 곁에서 사라진 야생의 가치를 복원하는 위대한 시작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글·사진= 김연수 생태칼럼리스트 wildik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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