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양균 기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은 아이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하려면 온 사회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속담의 범위를 확장하면 아이의 양육과 발달, 교육을 비롯해 치료와 재활에도 사회 전체가 관여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뉴스토마토>는 십대 정신건강 리포트 연속 보도를 통해 자해·자살의 벼랑 끝에 서 있는 미래세대의 정신건강 실태와 원인,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위한 지역 의료기관의 노력과 성취는 감동과 동시에 증가하는 청소년 자해·자살의 해법을 찾는 데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취재는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청소년 정신건강 특화 병원인 한서중앙병원의 도움으로 진행됐습니다.
한서중앙병원에 내원해 상당 기간 치료와 재활을 거친 지원(가명)양은 현재 응급구조사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다. 지구덕 병원장은 청소년이 꿈이 생기면 자해를 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AI 활용)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해 자국
지원(가명)이의 가족은 아빠와 언니였습니다. 소녀는 부모에 어리광을 부릴 때부터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 살았습니다. 가족의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지원이가 처음 자해를 시작했던 건 초등학생 무렵이었습니다. 소녀는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해를 했습니다.
지원이가 한서중앙병원에 처음 왔을 때가 곽현정 기획행정과장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중학생이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해 흉터투성이였습니다.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과연 회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죠.” 지원이는 보호병동에서 1년가량 머물며 치료와 함께 병원 위(Wee)센터에서 공부도 했습니다. “너무 똑똑한 아이여서 선생님들이 과외를 해주기도 했어요. 모두 지원이를 이뻐했어요.”
지원이는 퇴원을 해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보호자와 연락이 끊긴 지도 오래. 딱한 사정을 알고 있던 위센터는 지원이의 보호병동 입원 연장을 거듭 요청했습니다. 그러기를 수차례. 하지만 계속 입원해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결국 제 집에서 함께 지내고 치료는 병원장이 맡기로 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습니다. 제 집에 와서도 두 번이나 투신 시도를 하며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상태가 좋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현재 아이는 스무 살.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자해를 하며 추락하고 있을 때 자기를 처음 발견해 도와준 이들은 경찰과 응급구조사였습니다. 지원이는 응급구조사가 되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대학병원에 실습을 나간다고 했어요. 뿌듯하고 기특하더라고요.”
지원양의 사례는 방임 학대가 자해로 이어진 청소년이 고립과 자살로 사망하지 않고 생존한 ‘우수’ 케이스에 해당합니다. 그렇지만 전국에는 아직 더 많은 ‘지원’이가 자해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의 제15차 국가손상종합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소아청소년 사망의 53.9%가 ‘자해·자살’ 때문이었고, 이로 인한 청소년 사망률은 약 75%에 달했습니다. 모두가 지원양처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구덕 한서중앙병원장은 청소년 스스로 변화하도록 어른들과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시간과 관심, 애정을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청소년들이 ‘인생 뭐 있어. 이러다 죽으면 그만이지’ 이러다가도 본인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고, 소중한 것이 생기면 그것을 잃을지 죄책감이 생기고 도덕성이 형성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하고 싶은 게 생깁니다. 꿈이 생기는 순간이야말로 자해가 끊어지는 순간과 연결되죠.”
지구덕 한서중앙병원장은 품행장애 청소년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좀더 인내와 애정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서중앙병원 내 룰루랄라 Wee센터에 청소년들이 붙여놓은 글귀. (사진=김양균 기자)
가해자는 정말 가해자인가
증가하는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청소년들이 보이는 타인과 동물에 대한 과도한 공격성, 방화·재산 파괴·사기 및 절도·가출·학교 무단결석 등의 이상행동을 ‘일탈’로 뭉뚱그려 바라보려는 경향이 존재합니다. 이들에 대한 가혹한 처벌이 해법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인은 정신질환인 ‘품행장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품행장애에 따른 문제 행동은 조금씩 강도가 세지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남자아이는 10~12살, 여자아이는 12~14살에 처음 진단이 되는 것으로 보고됩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2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아·청소년의 평생 품행장애 유병률은 6.2%, 현재 유병률은 4.1%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남학생은 여학생 대비 3~4배 높게 발병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구덕 한서중앙병원장은 “죄책감이 있고, 여린 면도 존재하는데 행동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처럼 합니다. 이 경우, 기저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견됩니다.” 지 병원장이 최근 상담한 지연(가명)양은 가정 내 학대를 받으면서 학교폭력 피해자였습니다. 지연이는 피해를 당했음에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은 본인이 힘이 없어서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본인과 가해자를 동일시하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돈을 뺏거나 친구들을 때리고, 가출도 했습니다.
“그렇게 피해 청소년은 본인보다 약한 또래에게 가해자처럼 행동합니다. 이때 어른과 사회가 ‘쟤는 안돼’라고 규정짓는 순간, 청소년 자신도 사회의 시선을 곧 자기를 보는 시선으로 강화해 버리고 맙니다. 더 애정을 갖고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변할 수 있죠.”
김양균 기자 k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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