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원전 패권)① 에너지 패권, 바다 위에서 다시 쓰이다
러시아는 운용 경험, 중국은 건조 능력에서 우위
발전소 한 기가 만드는 수십 년의 에너지 관계
한국 조선업 앞에 열린 새로운 선택지
2026-08-20 16:57:47 2026-08-20 21:30:13
미국 국가이익센터는 19일 정책보고서 '바다 위의 표준'에서 부유식 SMR을 국제표준과 연료, 선체, 금융, 항만, 공급망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산업으로 분석했습니다. 한국 관련 모델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SMART100 기반 부유식 원전과 한국·덴마크 기반 솔트포스 에너지의 'seaMSR'을 다뤘습니다. 이들 모델이 인허가와 선박 인증에서 보인 진전에 세계적인 조선 역량까지 더해지면서, 한국은 부유식 SMR 시장을 선도할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조선·덴마크의 기술·미국의 규제·일본의 금융을 연결하는 4개국 협력 가능성을 살펴봅니다. (편집자 주)
 
미국 국가이익센터가 19일 발표한 정책보고서 '바다 위의 표준(Standards at Sea)' 표지. (이미지=미국 국가이익센터)
 
에너지 패권의 무대가 육지에서 바다로 넓어지고 있다. 부유식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소형 원자로를 선박이나 해상 플랫폼에 탑재해 전력이 필요한 지역으로 옮길 수 있는 발전설비다. 섬이나 항만, 광산처럼 대규모 원전과 송전망을 건설하기 어려운 지역에도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유식 SMR의 의미는 발전소 한 기를 바다에 띄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원자로와 조선, 핵연료, 항만, 금융이 하나의 공급망으로 맞물린다. 한 번 원전을 도입하면 공급국과 도입국의 관계는 수십 년 동안 이어진다. 부유식 SMR을 둘러싼 경쟁이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에너지 패권의 문제로 읽히는 이유다.
 
먼저 열리는 부유식 원전시장
 
민간 해상 원자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원자로로 선박을 움직이는 원자력 추진이고, 다른 하나는 선박이나 해상 플랫폼에 원자로를 탑재해 외부에 전력을 공급하는 부유식 원전이다. 같은 원자력을 이용하지만 상용화에 필요한 조건은 서로 다르다.
 
원자력 추진선은 연료를 자주 보충하지 않고 장기간 운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건조비가 높고 규제 부담도 커 기존 선박의 추진방식과 경제성을 놓고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 탄소배출 규제가 크게 강화되거나 별도의 정책지원이 뒤따라야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부유식 원전은 전력망 구축이 어려운 섬과 원거리 지역, 항만, 광산 등 이미 전력 수요가 있는 곳에 배치할 수 있어 활용처가 비교적 분명하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민간 해상 원자력 분야에서는 원자력 추진선보다 부유식 원전이 먼저 상용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이미 상업운전의 선례를 만든 만큼 부유식 원전은 먼 미래의 기술이라기보다 시장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산업에 가깝다.
 
미국의 50년 공백, 러시아의 선점
 
현재 민간 해상 원자력 분야에서 가장 앞선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원자력 쇄빙선 8척을 운용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상업용 부유식 원전도 가동하고 있다. 아카데믹 로모노소프호는 2020년부터 러시아 극동지역의 광산과 인근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위는 최초의 부유식 원전을 운용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다. 쇄빙선에 사용한 원자로 계열을 부유식 발전설비와 육상 원전으로 넓히고 있다. 같은 계열의 원자로를 여러 분야에 적용해 표준화와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미국도 과거 원자력 상선 NS서배너호와 부유식 원자로 스터지스호를 운용했다. 그러나 두 사업은 후속 주문이나 표준설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의 마지막 원자력 상선은 1971년, 부유식 원자로는 1976년 각각 퇴역을 맞이했다.
 
운용의 러시아, 확장의 중국
 
그러나 러시아가 당장 세계시장을 장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러시아는 여러 국가에 부유식 원전을 제안해 왔지만 2026년 중반까지 공개된 구속력 있는 해외 수출계약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정부가 대규모 금융지원까지 계속 제공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중국의 경쟁력은 러시아와 다른 데서 나온다. 아직 상업용 부유식 원전은 없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 건설 능력과 대규모 조선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육상용 SMR의 상용화를 준비하면서 해상용 원자로와 부유식 에너지·물류기지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
 
기술개발과 인허가가 마무리되면 대형 조선소와 기자재 공급망을 이용해 생산량을 빠르게 늘릴 수 있다. 러시아가 운용 경험에서 앞서 있다면 대량생산과 시장 확대 능력에서 우위를 갖고 있다.
 
반면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해군 원자력 추진 기술을 보유하고도 민간 해상 원전에서는 뒤처져 있다. 미국 해군 원자로는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가안보와 핵비확산 문제로 민간 활용이 사실상 어렵다. 민간에 필요하지 않은 군사적 성능에 맞춰 설계된 만큼 상업용 발전설비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미국은 육상 원전과 국방·우주 원자로, 핵연료 공급망에는 각각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반면 민간 해상 원자력은 해사청과 원자력규제위원회, 해안경비대의 협력이 막 형성되는 단계로, 별도의 연방 정규사업과 전용 예산도 없다. 기술보다 전략과 추진체계의 공백이 더 큰 문제인 셈이다.
 
에너지 수출이 만드는 장기 질서
 
부유식 원전 수출은 선박 한 척을 판매하는 것과 다르다. 도입국은 원전을 운용하는 동안 핵연료와 부품, 정비, 기술지원,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을 계속 공급받아야 한다.
 
러시아가 원자로와 연료, 운영, 금융을 묶어 수출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발전소가 가동되는 수십 년 동안 공급국과 도입국 사이에는 장기적인 공급·운영 관계가 형성된다. 중국도 국영기업과 정책금융을 앞세워 비슷한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부유식 원전은 항만이나 섬, 극지, 원거리 광산과 국방시설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전력망이 부족한 전략적 지역에서 산업개발을 뒷받침하고, 수출국의 외교·안보적 영향력을 장기간 유지하는 기반이 될 수도 있다.
 
항만 접근권도 해상 원전의 영향력을 좌우한다. 원자력 선박이나 부유식 원전은 입항과 접안, 통항이 허용된 곳에서만 운영할 수 있다. 먼저 상업운전에 나선 국가가 검사 방식과 비상계획, 허용 항로의 선례를 만들면 그 기준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조선 강국 한국의 다음 좌표
 
부유식 원전시장이 커지면 한국 조선업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 조선소에서 원자로와 선체를 함께 만들고 같은 설계를 반복 생산하는 방식은 한국이 오랫동안 경쟁력을 쌓아온 분야와 맞닿아 있다.
 
다만 한국이 어떤 역할을 맡느냐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몫은 달라진다. 다른 나라가 정한 기준에 따라 선체만 만드는 제작국에 머물 수도 있고, 설계와 실증, 인허가와 표준 마련에 함께 참여하는 주도국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아직 부유식 SMR의 세계시장은 본격적으로 열리지 않았다. 안전기준과 항만 입항규칙, 사고 책임과 보험체계도 완성되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큰 시장이지만 한국에는 시장의 규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하다.
 
부유식 SMR 시장의 주도권은 누가 원자로를 먼저 개발했느냐보다 누가 상용화와 표준화를 먼저 이뤄내느냐에 달려 있다. 기술을 실제 해상에 배치하고, 그 운용 경험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안전·인허가·운항 기준으로 정착시킨 국가가 시장의 규칙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보고서 저자
폴 J. 손더스 미국 국가이익센터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박상길 미국 국가이익센터 원자력에너지 선임연구원·한미에너지포럼 디렉터
 
미국 국가이익센터
미국 국가이익센터(Center for the National Interest)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94년 설립한 초당파적 비영리 정책연구기관이다. 옛 닉슨센터가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미국의 국익에 기반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외교·안보와 에너지정책 등을 연구하며 국제문제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를 발행한다.
 
정리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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