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백겸 기자] 원청에 대해 하청과의 교섭 의무를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판정에도 원청 기업이 이에 행정소송을 걸거나, 교섭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등의 이유로 실제 원·하청 본교섭이 이뤄지는 곳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원청교섭 활성화 및 정부 역할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금속노조)
2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날까지 원청 515곳에 민주노총 소속 하청 노조들이 640건 교섭을 요청했으나, 이 중 실제 본교섭에 돌입한 사례는 12건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만 보면 소속 지회 및 분회 77곳이 25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지만, 단 2곳만 본교섭이 진행 중입니다.
중앙·지방노동위원회가 원청에 대해 하청 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저히 적은 수치입니다. 중노위에 따르면 지난 3월10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부터 지난달까지 노동위에 접수된 원·하청 교섭 관련 사건 약 560건 가운데 약 360건은 결정·판정을 받거나, 교섭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노동위의 판정이 곧바로 본교섭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노조 측은 원청 기업들이 노동위의 교섭 의무 인정 판정을 받은 뒤에도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교섭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금속노조 등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지방노동위 초심에 이어 중앙노동위 재심에서도 하청 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한다는 판단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지난달 20일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냈습니다.
앞서 경남지방노동위는 지난 4월 한화오션의 급식 하청인 웰리브의 노동조합도 교섭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정했습니다. 지난 6월 중앙노동위도 한화오션의 웰리브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한화오션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본교섭은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뤄지게 된 상황입니다. 한화오션뿐 아니라 기아의 소형차 제조사인 동희오토 등 총 5개 원청 기업이 노동위의 판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낸 상황입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개정 노동조합법과 관련된 행정소송 접수 건수는 7건이며, 이 중 5건은 기업이 신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은 "하청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논리와 관련, 법리적으로 다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중앙노동위 결정을 거부하거나 교섭을 지연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근에는 원·하청 교섭을 위해 노사 간 상견례까지 진행한 포스코도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해 교섭이 중단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포스코와 금속노조에 따르면 포스코는 지난 18일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 결정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앞서 지난 4월 경북지방노동위(초심)는 포스코에 대한 하청 교섭단위 분리 신청 사건에서 포스코에 원청 교섭을 요구한 민주노총 소속 금속노조와 플랜트건설노조, 한국노총 소속 금속노련 등 3곳을 각각 분리해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와 함께, 포스코가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 내용이나 산업안전 제반 조건 등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고 있다며 사용자성도 인정했습니다. 이후 지난 6월 중앙노동위에서도 초심의 결정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이후 포스코는 원청 교섭을 요구한 3곳과 본교섭의 사전 과정인 상견례를 지난주 진행하는 등 절차를 밟아왔으나, 돌연 행정소송으로 제동을 건 겁니다.
이에 대해 임용섭 포스코 사내하청 광양지회 지회장은 "원청이 정부 눈치를 보면서 형식적인 교섭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하청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교섭을 하려고 하는 태도는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포스코 측은 행정소송에 대해 "개정 노조법 취지나 노동위원회 결정은 존중하고 교섭 과정도 진행하는 중"이라며 "이와 별개로 개정된 노동조법에 대해 명확하게 판단을 받아보고자 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행정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원청 기업이 교섭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 본교섭이 미뤄지고 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현대차는 지난 6월 울산지방노동위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결정을 냈음에도 교섭 요구 사실 공고를 하지 않아 교섭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HD현대중공업, HD현대삼호는 하청 노조와 교섭 의제에 대한 이견으로 교섭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청은 산업안전 관련 내용으로 의제를 축소하려고 하는 반면, 노조 측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에 영향을 주는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교섭에서는 임금과 관련된 내용까지 교섭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초 측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수차례 발송했음에도 교섭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며 노동위에 조정 신청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노조가 제안한 다양한 안건 중 관련 법령과 단체교섭의 취지에 부합하는 안건을 중심으로 성실히 협의를 이어가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노동계는 노동위 판정에도 원청 기업의 불복 및 불성실한 태도로 교섭이 진행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금속노조는 19일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통해 "원청은 교섭 거부라는 부당노동행위를 벌이고 있다"면서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면 '하청 무권리 사태'는 더욱 커지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백겸 기자 kb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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