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
2026-09-15 06:00:00 2026-09-15 06:00:00
“저는 이런 일을 잘해요. 저 여기 있어요. 저를 쓰세요.”
 
운영 중인 트레바리 북클럽의 책으로 선정한 김나이 작가의 『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를 읽다가 이 문장에서 한참 머물렀다.
 
회사에 다닐 때는 굳이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 이름과 직급이 나를 설명해 주고, 맡은 직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대신 말해준다. 하지만 조직을 떠나는 순간부터는 명함 없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일찍 떠나든 늦게 떠나든, 스스로 떠나든 떠밀려 떠나든 마지막 출근일은 온다. 언젠가 혼자 서야 하지만, 우리는 그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걸 잊고 지낸다.
 
북클럽에서 멤버들과 함께 책에 나온 ‘나만의 일 찾기’ 워크숍을 해봤다. 내가 인식한 문제, 몰입했던 순간, 그 안에서 했던 기여를 돌아본다. 그동안 쌓아온 일 경험에서 반복되는 나만의 패턴을 찾아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정의해 보는 과정이다.
 
한 멤버는 감사 업무를 4년 넘게 해왔다. 처음에는 자신을 ‘잘못을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몰입한 순간을 짚어보니 다른 얼굴이 나왔다. 그가 좋아했던 건 잘못을 찾는 순간이 아니라,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절차를 고쳐나가는 순간이었다. 자신이 거쳐 간 자리에 1%라도 나아진 흔적을 남기는 것, 그 순간이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를 ‘감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개선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직무와 직급을 걷어내고 나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
 
혼자 서기 위한 준비도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퇴사하면 뭘 하지?’라고 막연히 묻기보다 어떤 일에 유난히 몰입했는지, 어떤 결과에 뿌듯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반복해서 나에게 부탁한 일,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맡은 역할도 좋은 단서다. 그다음에는 그것이 누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일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회사를 떠나기 전에 해봐야 한다. 김나이 작가는 책에서 진짜 제품을 만들기 전에 최소한의 시간과 비용으로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는 ‘프리토타이핑’을 소개한다. 나도 회사에 다니면서 기회가 오면 강연을 하고 칼럼을 연재했다. 당장 직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 마음 편히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글이 모여 어느 날 책 한 권이 됐다. 은퇴를 고민하는 지금도 강의를 하고, 컨설팅을 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작가로서의 프리토타이핑을 하고 있다. 조직을 떠난 뒤 생계를 걸고 다음 일을 찾으면 마음이 급해진다. 잘되지 않아도 다시 해보고, 생각과 다르면 방향을 바꿀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시험해 봐야 하는 이유다.
 
나는 32년 동안 여덟 개의 회사를 다니며 수많은 일을 했다. 산업도 직무도 달랐지만, 조직을 떠난 뒤 지나온 일을 꺼내놓고 보니 그 안에는 반복되는 내가 있었다. 새로운 문제를 만나면 궁금했고, 답이 없는 일을 맡으면 답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풀어 이전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 가장 즐거웠다. 회사와 직책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내가 좋아하고 잘했던 일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은 AI가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거라는 전망에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안전한지 묻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어떤 직무가 남을지를 예측하기보다, 직무가 달라져도 남는 나의 쓸모를 아는 게 먼저다. 변하는 것을 좇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인지 알고, 그것을 지금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계속 바꾸고 키워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혼자 서는 순간이 온다. 나의 쓸모를 발견하고 키워가는 일은 퇴사한 다음의 숙제가 아니다.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이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찬찬히 정의하고, 그것이 누구에게 어떤 쓸모가 될 수 있는지 찾아보자. 아직 조직이라는 안전망이 있을 때 작게라도 시험해 보자.
 
송승선 커리어 작가, 『무경계 인간 호모 옴니쿠스』 저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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