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한화오션 특수선 건조 구역 안벽에 계류 중인 장보고-Ⅲ 배치-Ⅱ 2번함 서희함. (사진=한화오션)
[창원·거제=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지난 15일 오전 경남 거제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특수선 건조 구역. 한국이 독자 설계한 3600톤(t)급 잠수함의 두 번째 잠수함인 서희함이 진수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서는 진수를 마친 3600t급 한국형 호위함 평택함의 시운전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전략자산인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한 첨단 잠수함과 최신예 수상 전투함을 동시에 건조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전날(14일)엔 경남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2사업장 성능시험장에서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 로켓 체계 등 기존 무기체계를 넘어 무인지상차량(UGV)과 유·무인 복합체계로 이어지는 한화의 새로운 전장 구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공장 견학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각각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두 회사의 생산 현장과 첨단기술을 한꺼번에 공개한 것입니다. 특히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두 회사에서 모두 직책을 맡고 있는 정인섭 사장이 직접 취재진을 맞은 것은 한화그룹이 육상과 해양 방산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연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2023년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당시부터 정 사장은 한화의 조선·방산 통합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입니다. 정 사장은 매주 서울과 창원, 거제를 오가며 업무를 보고 있다고 자신의 일과를 소개했습니다. 이번 현장 공개에서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한화가 조선·해양과 지상방산의 생산 현장을 따로 보여주면서도 그룹 핵심 인력을 양쪽에 걸쳐 배치하는 것은 각 계열사의 사업을 독립적으로 키우는 것을 넘어 그룹 차원의 방산 포트폴리오를 연결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화오션 특수선 건조 구역에서 진수를 마친 울산급 호위함 배치-Ⅲ 5번함 평택함. (사진=한화오션)
잠수함·수상함 동시건조 가능…기술혁신으로 건조능력 증대
한화오션에서 취재진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장보고-Ⅲ 배치-Ⅱ 2번함 서희함이었습니다. 3600t급으로 이전 버전인 도산안창호급보다 선체가 커졌고 전투 체계와 소나 체계가 개선됐습니다. 국산화율도 80% 수준입니다. 올 하반기 진수를 앞두고 있습니다. 취재진이 서희함 내부를 둘러보면서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한화오션이 개발한 공기불요추진체계(AIP)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리튬이온전지를 결합한 추진 체계였습니다. 디젤 잠수함이 추진 체계로는 세계 최초인 데다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술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울산급 배치-Ⅲ 5번함 평택함도 해군에 인도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지난달 중순 진수 이후 탑재된 장비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하는 단계였고, 이 작업을 마치면 다음 달부터는 정박시운전에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평택함에서도 전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본 한국형 수직발사체계(KVLS)가 장착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회사의 기술이 수상함에서도 하나로 이어지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화오션은 건조 방식의 혁신을 통해 함정 건조 기간도 단축하고 있었습니다. 선체 블록을 대형화해 탑재 수량을 절반가량 줄이면서 작업 기간을 1~2개월 단축한 것입니다. 이 공법은 울산급 배치-Ⅳ와 한국형구축함(KDDX)에 적용할 계획이라는 게 한화오션의 설명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한화오션은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 통합관제 시스템과 스마트크레인이 적용된 특수선 제4공장을 공개하며 2030년까지 함정 동시 건조 능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습니다.
지난 14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2사업장 성능시험장에서 K21 보병전투장갑차, 다연장 로켓체계 천무,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 천궁-II, 차륜형 장갑차 타이곤,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을 비롯한 UGV 3종이 기동하고 있다.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상에선 2030년까지 소형·중형·대형 UGV 6종 구축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창원2사업장에서 공개한 미래의 핵심은 '무인화'였습니다.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 로켓 체계,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를 2029년까지 선택적으로 유·무인 복합체계로 전환하고, 2030년까지 소형·중형·대형 UGV 6종을 구축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 첫 주자로 선보인 건 최근 방위사업청과 계약한 다목적 무인차량 '아리온스멧'. 한국군 최초의 다목적무인차량으로 국산화율은 98% 이상입니다. 내년부터 육군과 해병대에 공급됩니다. 뒤를 이어 10t 미만 소형 다목적무인차량, 20t 미만 T-RCV, 30t급 H-UGV 등 UGV 6종을 확보한다는 계획입니다. 폭발물 탐지제거로봇, 무인수색차량, AI 기반 공병전투차량 등으로 무인체계 영역도 넓혀갈 방침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한화가 왜 생산 현장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한화오션에서는 '잠수함과 호위함을 설계하고 건조할 수 있다'는 것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는 '기존 지상 무기체계를 무인화하고 새로운 전투차량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만 속내는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수중에서 수상, 지상으로 이어지는 한화의 방산 역량이 이제 어디로 향하는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KAI 지분 확대…우주까지 이어지는 한화 방산지도
한화는 지난달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을 15.89%까지 끌어올렸습니다. KAI 2대 주주가 됐고,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명시했습니다. 또 사업 협력 확대와 글로벌 수출 지원 등에 관한 KAI 의사결정 과정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한화가 이미 K-방산의 '원톱' 지위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천무·무인체계가 지상을 담당하고, 한화오션의 잠수함·수상함이 해양을 담당합니다. 한화시스템의 레이더와 전투 체계는 이들 플랫폼을 연결합니다. 여기에 항공과 우주를 더해 완전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인 것입니다.
KAI는 전투기와 헬기, 무인기 등 항공기 체계종합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한화는 항공엔진과 유도무기, 레이더, 위성, 지상·해양 방산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두 회사의 결합 또는 협력 가능성은 시너지를 내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AI는 올해 2월 무인기 공동개발·수출, 국산 엔진 탑재 항공기 개발 및 공동 마케팅, 우주 사업 협력 등을 위한 MOU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그룹 차원의 인력 배치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화는 과거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그룹 핵심 인력을 이동시켰고, 정인섭 사장 역시 당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한화오션으로 이동해 거제 사업장 총괄을 맡았습니다. 그런 정 사장이 이번에 취재진을 맞았습니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한화그룹 핵심 인력이 배치되고 있는 흐름도 감지됩니다. 이는 단순한 계열사 인사 이상의 의미로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대규모 투자와 인수·사업재편을 실제로 실행하기 위한 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는 과정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현재 KAI의 최대주주는 26.41%를 보유한 한국수출입은행입니다. 공정래위원회도 한화의 KAI 지분 확대가 현재 지배관계를 형성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 한화의 KAI 인수를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습니다. 다만 한화가 KAI 지분을 빠르게 늘리고,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밝히고, 올해 초부터 양사 협력의 틀을 마련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화 역시 향후 정부 주도의 KAI 민영화가 공론화될 경우 인수 또는 통합 추진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결국 이번 생산 현장 공개는 거제의 서희함과 평택함서 한화오션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의 기술이 만나고, 창원에서는 K9과 천무의 무인화가 진행되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미래 전장에서 한화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거기에 이제 필요한 마지막 퍼즐인 항공과 우주를 찾고 있다는 뜻도 내비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한화가 보여준 것은 각각의 무기체계가 아니라 육·해·공과 우주를 하나의 방산 생태계로 연결할 수 있는 생산능력과 기술 포트폴리오였습니다.
KAI 지분 확대가 실제 인수·통합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한화가 지향하는 방향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개별 무기체계의 경쟁을 넘어 '한국형 종합 방산 기업'으로 몸집을 키우겠다는 한화의 다음 승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창원·거제=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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