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용융염 기반 시스템은 폴리에틸렌 폐기물을 휘발유나 디젤과 유사한 연료로 변환한다.(사진=Jacquelyn DeMink/ORNL, U.S. Dept. of Energy)
[뉴스토마토 임삼진 기자] 일상에서 흔히 버려지는 비닐 쇼핑백과 플라스틱 도마의 주원료인 '폴리에틸렌(PE)'을 자동차 연료로 둔갑시키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고온의 열분해나 비싼 귀금속 촉매 없이, 이른바 '마법의 소금'으로 불리는 용융염(molten salt)을 이용해 고부가가치 연료로 변환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상용화될 경우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인 폐플라스틱 문제 해결은 물론, 국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ORNL) 연구진은 흔히 버려지는 탄화수소 폴리머(중합체)를 가솔린 및 디젤과 유사한 운송·산업용 연료로 변환하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염화알루미늄이 포함된 용융염을 용매이자 촉매로 사용하는 이 발견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으며,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JACS)'에 게재됐습니다.
500도 열분해 한계 극복, 200도 이하 '가정용 오븐 온도'로 낮춰
핵심은 촉매 반응의 '효율'과 '온도'입니다. 기존에 폴리에틸렌을 가솔린으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섭씨 450~500도에 달하는 초고온 환경에서 긴 폴리머 사슬을 작은 탄화수소로 끊어내는 열분해(pyrolysis)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ORNL 연구진이 개발한 시스템은 섭씨 200도 이하의 조건에서도 약 60%의 가솔린 수율을 달성했습니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젠젠 양(Zhenzhen Yang) ORNL 연구원은 "폴리머를 연료로 변환하는 기존 기술과 달리, 이번 신공정은 귀금속 촉매나 유기 용매, 외부 수소의 주입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라며 "어떠한 촉매 개시제나 별도 용매 없이 200도 미만의 온도에서 용융염을 반응 매개체로 사용해 폐기물로부터 고부가가치 화학물질을 생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연구를 주도한 테네시대학교(UTK) 소속 리치 추(Liqi Qiu) 박사는 "우리는 매우 효율적이고 선택적인 '폴리에틸렌-가솔린 변환 공정'을 개발했다"고 말합니다.
최첨단 분석 장비 총동원해 화학 반응 비밀 풀어
연구진은 폴리머가 연료로 변하는 '마법'의 비밀을 풀기 위해 최첨단 과학 장비를 총동원했습니다. 연X선 분광법(Soft X-ray spectroscopy)과 핵자기공명(NMR) 분석을 통해, 전하를 띤 알루미늄 원자가 각각 3개의 다른 원자와 결합하여 긴 폴리머 사슬을 짧게 끊어내는 '강산성 촉매 자리(catalytic sites)'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또한, 동위원소 표지법과 중성자 산란(Neutron scattering) 기술을 활용해 비교적 단순한 폴리머 사슬은 가솔린과 같은 연료로, 복잡한 사슬은 디젤과 같은 연료로 어떻게 형성되는지 규명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솅 다이(Sheng Dai) ORNL 화학 부문장은 "폴리머에는 다량의 수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중성자는 수소와 그 동위원소인 중수소 등 가벼운 원소를 식별하는 데 이상적인 도구"라며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LBNL)의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등을 활용해 알루미늄 촉매 자리가 촉매 활성을 띤다는 점을 교차 검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상용화 위한 '스케일업' 용이, 수분 흡수 단점 극복 과제
1960년대 '용융염 원자로 실험'을 통해 용융염을 원자로의 연료이자 냉각재로 사용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이 분야 연구를 선도해 온 ORNL은, 이번 연구를 통해 용융염의 무한한 활용 가능성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무기 화합물인 용융염은 가혹한 반응 조건에서도 안정성을 유지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이 부문장은 "우리 시스템은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라며 "첫째, 시스템이 안정적이어서 상용화를 위한 규모 확대(Scale-up)가 훨씬 용이하며, 둘째로 기존 시스템들과 달리 촉매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별도의 '개시제(initiator)'가 필요 없다는 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상용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남아 있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알루미늄 촉매 시스템은 활성이 뛰어나고 가격이 저렴하지만, 수분을 쉽게 흡수해 안정성을 잃는 흡습성(hygroscopic)을 띠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향후 할로겐이나 탄소 등을 이용해 용융염을 가두어 분리 및 가공 효율을 높이는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추 연구원은 "폴리머 원료는 소비자 폐기물에서 무궁무진하게 얻을 수 있으며, 우리가 개발한 알루미늄 용융염 촉매 시스템은 매우 저렴하다"며 "이번 성과는 산업계에 매우 유망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임삼진 기자 isj20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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