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시운전 중인 장보고-Ⅲ 배치-Ⅱ 2번함 서희함.(사진=한화오션)
핵추진잠수함 사업에서 사고 위험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는 조선소 참여를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다. 함정의 설계와 제작에 자신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는 손해배상 위험이 남아 있다면 기업은 고위험 공정에 들어가기 어렵다. 정부가 보험 가입을 요구하고 보험료를 사업비에 반영하는 것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는지도 따져야 한다. 보험은 약관에서 정한 위험을 보장한다. 가입했다는 사실이 모든 손해의 보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핵잠 건조와 시운전에는 일반 함정의 위험과 원자력 관련 위험이 함께 존재한다. 화재와 충돌, 장비 파손과 인명사고를 검토하는 동시에 방사성물질과 관련된 손해의 책임도 정해야 한다. 어떤 위험을 보험시장이 인수하고 어느 범위까지 보장할 수 있는지는 실제 견적과 약관을 확인해야 알 수 있다. 핵잠이라는 이유로 모든 보험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해서도 안 되지만, 일반 함정 보험으로 충분하다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우선 구분해야 할 것은 보험료와 보장범위다. 보험료를 더 낸다고 모든 위험이 추가되는 것은 아니다. 약관에서 제외한 위험은 별도의 인수 합의가 없으면 보장받기 어렵고, 보장한도를 넘는 손해는 다른 재원으로 처리해야 한다. 자기부담금과 보험기간, 피보험자 범위도 실제 책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계약 체결 전에 가입 가능한 보험을 조사하고 정부가 요구하는 조건과 보험시장이 제공하는 조건 사이의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건조보험과 시운전보험의 범위·금액·기간을 정하고 합리적인 보험료를 계약금액에 반영해야 한다. 정부의 시험 요구가 확대되거나 업체 책임 없이 사업기간이 늘어나 보험료가 증가한다면 그 증가분도 검증해 변경계약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정부 결정 때문에 늘어난 보험 비용을 기존 계약금액 안에서 처리하도록 하면 기업은 위험을 떠안는 동시에 그 위험을 관리하는 비용까지 부담하게 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보험 인수가 거절되거나 필요한 보장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다. 조선소가 거절 사유와 제외 위험, 견적 등 확인자료를 제출하면 정부는 대체 보장과 국가 부담방식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책임질 범위는 보험가입이 어려운 위험과 보장한도 초과 위험, 정부가 계약상 부담하기로 한 위험 가운데 법률이 허용한 것으로 특정해야 한다. 보험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위험을 기업에 남겨 놓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가 모든 사고를 무제한 보상하자는 것도 아니다. 국가 부담의 대상과 한도, 재원, 지급절차를 먼저 정해야 한다. 위험별로 누가 책임지고 어떤 조건에서 보상하는지 계약 전에 서면으로 확정해야 기업도 보험과 자체 재원을 계획할 수 있다. 사고 발생 후 정부와 업체가 처음부터 책임을 다투면 피해구제와 사업 정상화가 모두 늦어진다. 위험분담은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작동할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원자력 손해는 일반적인 함정 파손과 구분해 검토해야 한다. 기존 원자력 손해 관련 법률이 군용 원자로와 정부 사업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건조·연료 취급·시험·인도 과정에서 책임 주체가 누구인지 법률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적용이 불명확하거나 필요한 재정보장에 공백이 있다면 특별법에 보완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원자력 손해의 책임을 조선소와 원자로 공급기관 사이의 계약만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국가 위험분담의 핵심 근거를 시행령에만 맡겨서도 안 된다. 재정 부담과 피해자의 권리에 영향을 주는 내용은 법률에서 대상과 책임, 한도와 재원의 틀을 먼저 정해야 한다. 대통령령은 증빙자료와 심사·지급절차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가 보상할 수 있다는 선언적 문구만으로는 조선소가 실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재정 당국과 보험기관의 검토도 입법 과정에서 함께 이뤄져야 한다.
피해자의 권리는 별도로 보호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정한 책임 감면을 제3자 피해자의 법정 배상청구권을 줄이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주민과 근로자 등의 피해를 신속히 구제할 재정보장 체계를 마련하고, 국가와 업체 사이의 최종 비용분담은 법률과 계약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사업 참여를 촉진하는 제도와 피해구제 제도가 함께 설계돼야 국민도 핵잠 사업의 안전관리를 신뢰할 수 있다.
기업의 고의·중과실, 안전기준 위반과 허위자료 제출까지 면책하는 구조는 피해야 한다. 예방 가능한 사고에 대한 책임이 흐려지면 안전투자의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 정부 지원은 철저한 품질관리, 검사와 기록, 사고 보고의무를 전제로 해야 한다. 조선소도 협력업체와 원자로 공급기관의 업무 경계를 확인하고 공동 작업의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국가가 위험을 분담할수록 책임 있는 관리체계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보험 공백이 남았다면 고위험 공정의 착수조건부터 재협의해야 한다. 책임 없는 대기비용과 일정도 조정하고, 사고 이후 조사·지급·구상 절차까지 정해야 한다.
핵잠 사업은 보험료를 얼마 책정하느냐를 넘어 국가가 어떤 위험을 책임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사업이다. 국회와 정부는 조선소·원자로 개발기관·보험기관·안전 전문가와 실제 보장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가입 가능한 위험에는 보험을 적용하고 남는 위험에는 명확한 국가 부담과 피해구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 조건이 확정돼야 조선소도 안전을 지키면서 시험과 건조에 참여할 수 있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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