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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강제징용 피해자 측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지난 6월 다른 재판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권리 자체가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린지 두 달여 만이다.
다만 두 재판부의 판단 전제는 다르다.
우선 지난 11일 내려진 판결은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따르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문제 삼았다.
피해자 유족 측이 2018년 10월 대법원 전합에서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확정한 날부터가 소멸시효 기산점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 일을 기준 삼아야 한다는 일본기업 측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재판관할권은 우리 법원에 있다고 봤다.
반면, 지난 6월 재판부는 우리 법원에 재판 관할권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다. 2018년 대법 판례 자체를 정면으로 뒤집은 판결이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제한된다”며 소수의견을 낸 권순일·조재연 대법관과 같은 취지의 논리를 내세웠다.
결론은 같아도 두 재판부의 판단 전제는 정반대인 셈이다. 배상청구권 가능 여부에 대한 논란이 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 손해배상청구권 소멸 시점 기준도 쟁점으로 떠오면서 사법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앞으로도 강제징용 관련 재판은 혼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손해배상 청구 권리 자체가 있는지 여부를 다퉈야 하고, 특히 배상 청구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쟁점은 2018년 대법 판결 때도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앞으로 일선 법원에서 계속 새롭게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부 판단처럼 배상 청구 기산점을 2018년 10월이 아닌 2012년 5월 대법원 파기환송심 날짜로 본다면 앞으로도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은 소송조차 낼 수 없게 된다. 2018년 10월로 기준을 잡는다 해도 오는 10월 배상 청구 권리가 소멸된다.
이 쟁점들을 매듭짓는 곳은 결국 상고심이 되겠지만 당장 10월을 앞두고 그 속도를 기다릴 수 없다. 우선 정부 주도 하의 소멸시효 기준안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또 지금으로선 일선 법원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 배상 청구권 관련 쟁점이 일본 전범기업들에 면죄부를 부여하지 않도록 판례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법원의 판단은 국민의 인권과 재산권을 보호하고, 헌법이 수호하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는 데 있다. 우리 민족사의 비극은 외교 거래 대상이 아니다.
박효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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