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전세시장 수요가 둔화하면서 거래량과 가격 모두 급격히 얼어붙고 있습니다. 연립주택과 오피스텔·빌라 등을 대거 사들여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이른바 ‘빌라왕’ 사건으로 전세사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전세시장이 혼란에 빠진 모습입니다.
특히 고금리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에서 임대차 시장을 둘러싼 불안까지 겹치며 서울 강남 등 주요 지역에서는 임대차 갱신 시 기존 계약보다 전월세 금액을 감액하는 갱신 계약이 이뤄지는가 하면 깡통전세와 역전세난에 대한 우려도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도심 모습. (사진=백아란기자)
2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양수자인어반게이트는 이달 13일 전용면적 16㎡가 1억85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직전달인 3월 1억9800만원(4층)에 매매 계약이 이뤄진 곳으로,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을 넘어서는 ‘깡통전세’로 전락한 셈입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전세 보증금이 수억원 넘게 빠지며 하락 거래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강남 개포동 삼익대청아파트의 경우 지난 2월 전용 39㎡가 6억2000만원(4층)에 전세계약을 맺었지만 한달 후 4억1000만원(14층)까지 하락했습니다. 송파구 한양1차는 작년 말 6억3000만원(전용 64㎡)에 달하던 보증금이 지난달 4억4000만원까지 내려갔으며 개포래미안포레스트는 전용112㎡는 이달 갱신 계약을 맺으며 보증금을 기존 21억원에서 15억원으로 낮췄습니다.
(표=뉴스토마토)
서울 강남 등 상대적으로 고가 아파트가 많은 지역도 전세사기 등의 악영향에서 무풍지대가 아닌 것입니다. 문제는 ‘전세 포비아(공포)’가 확산하면서 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더 떨어지는 ‘깡통 전세’나 집주인이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가 속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지역 연립·다세대의 최근 3개월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은 평균 76.8%로 영등포구(86.3%)·도봉구(85.2%)·강북구(84.9%)·성동구(84.1%)·구로구(84%)·광진구(83.4%)·중구(82.9%)·송파구(82.7%)·강서구(81.4%)·강동구(80.2%) 등 서울 10개구에서 이미 80%를 넘긴 상태입니다.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육박하면서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위험이 커진 것입니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전세가격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빌라왕 등 전세 사기 피해를 걱정하는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전세시장도 외면받는 실정입니다.
(표=뉴스토마토)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신고된 지난달 아파트 등 집합건물의 전세거래 건수(계약일 기준)는 2만4596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년동기(2만9046건)에 견줘 15.3% 감소한 수준입니다. 특히 다세대·연립주택의 거래건수는 5490건으로 1년 전보다 30.3% 쪼그라들었으며 단독·다가구와 오피스텔은 각각 32%, 18.3% 줄었습니다.
KB부동산의 전세수급동향을 보면 이달 17일 기준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77.3으로 2년 전인 167.1(21년 4월26일 기준) 대비 53.7% 줄어들었고 서울 또한 146.4에서 70.6으로 반토막났습니다. 전세수급지수는 0~200 사이로, 낮을수록 수요 부족을 의미합니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임대차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 모양새입니다. 황한솔 경제만랩 리서치연구원은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등의 문제로 빌라 전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세 비중은 점점 줄고, 준월세나 준전세로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분위기”라고 평가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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