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연이은 유상증자, 혼돈의 자본시장
2025-03-24 16:24:17 2025-03-24 16:36:05
3조6000억원.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규모 유상증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얘기다. 회사는 20일 장 마감 후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를 알렸고, 다음 날인 21일 주가는 무려 13%나 하락했다. 한화그룹 계열사 주가까지 끌어내렸다. 24일 경영진들의 자사주 매입 효과 등으로 7%가량 반등했지만 주주들은 분노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 조달에 동원되는 주주들의 지분 희석은 피할 수 없다. 반면 그룹의 총수나 회사 대표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산업계와 자본시장 등은 회사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투자 결정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 방법과 시점에 대해 의구심을 표한다. 주가는 지난 18일 역대 최고가를 찍었고, 회사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규모는 3조원에 달한다. 영업이익이 2조원에 육박하며 5년치 이상의 수주잔고를 확보해, 앞으로 들어올 현금도 충분하다. 회사는 조달된 자금을 2028년까지 총 4년에 걸쳐 투자한다고 했다. 회사 스스로 투자금을 감내할 여력이 되며, 돈이 그리 급하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삼성SDI(006400)의 2조원 규모 유상증자 이후 한화에어로의 연이은 대규모 유상증자로 주주들의 불만이 커지며, 오히려 상법 개정안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은 야당 주도로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삼성SDI나 한화에어로 처럼 사전에 주주들과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인 회사의 결정을 주주들에게 강요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 보고 있다. 이들의 유상증자를 두고,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같이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상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던 재계와 경제단체들이 머쓱해진 것 같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8단체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송 남발이 예상된다며 기업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왔는데, 유상증자 결정으로 주가가 급락하고 주주들이 반발하는 '부정적'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상법 개정안이 더욱 절실한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계를 탓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중심을 잡아야 할 금감원도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금감원은 삼성SDI와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신속 처리"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자본시장 선진화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상법 개정안에 '직을 걸고', '열린 토론을 해보자'며 찬성한다고 했다. 금감원이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는 대기업의 기습 유상증자에 긍정적 신호를 주면서도, 주주 권익을 제고하는 상법 개정안 통과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앞뒤가 안 맞는다. 자본시장 선진화와 그 방법론에 대해 금감원의 일관된 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보라 증권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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