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이라더니 탄핵 ‘기각’…정치적 판단한 헌재
다수의견 ‘재판관 불임명’만 위헌 인정
법조계 “법리 아닌 정치적 판단” 비판
마은혁 임명건…윤 탄핵 최대 변수될까
2025-03-24 16:44:11 2025-03-24 16:48:59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다수 의견으로 한 총리의 ‘헌법 재판관 임명 거부’ 행위가 위헌·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한 총리 파면으로 얻을 국가적 손실이 더 크다며 파면하진 않았습니다. 법조계에선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비판이 거셉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이날부터 윤석열씨의 탄핵심판 사건 결론을 내리기 위한 평의를 매일 진행한다. 또한 지난달 19일 변론을 종결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에 대한 결론을 이번 주 중 낼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뉴시스)
 
이날 오전 헌재가 한 총리의 기각을 선고한 직후 기자들에게 배포한 '한 총리 탄핵 사건 결정문'에 따르면, 한 총리 탄핵소추 사유 중 다수 의견으로 위헌·위법성이 인정된 건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행위가 유일합니다.
 
앞서 한 총리는 △김건희·채상병특검법 거부권 행사 △윤석열씨 내란행위 공모·묵인·방조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공동국정운영체제 △내란 상설특검 임명절차 회피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등 5가지 사유로 지난해 12월27일 국회로부터 탄핵됐습니다. 
 
이날 헌법 재판관 임명 거부 행위의 위헌·위법성을 인정한 재판관은 8명 가운데 5명입니다. 한 총리 탄핵에 기각 의견을 낸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과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재판관 등입니다.
 
김복형 재판관은 한 총리 탄핵에 기각 의견을 냈으면서도 헌법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위헌·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각하 의견을 내 본안 결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은 “한 총리는 재판관 선출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국회가 선출한 3인을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겠다는 거부의사를 미리 종국적으로 표시해 헌법상의 구체적 작위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아울러 한 총리가 임명을 거부한 탓에 당시 헌재 ‘6인 체제’에서 윤석열씨 탄핵심판을 못 할 수도 있었단 점을 언급하며 “헌법·법률 위반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논리전개가 곧 파면 결정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4명의 재판관들은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상황에서 파면결정은 국정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했습니다. 또 한 총리 탄핵소추 이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조한창·정계선 재판관을 임명해서 한 총리의 임명 거부로 손상된 헌법질서가 일부 회복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봤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으로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담화를 마친 뒤 브리핑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헌재의 이율배반적인 판단에 대해선 곧장 정치적 판단이란 지적이 나왔습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황치연 한국법치진흥원장은 “위헌·위법의 중대성은 선출직인 대통령 탄핵사건에서만 적용돼야 한다”며 “법리적 판단이라기보단 정무적 판단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초대 헌법연구위원을 지낸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총리가 재판관을 임명 안 한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최 부총리가 두 재판관을 임명했다는 점을 왜 고려하냐”며 “기각결정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인용의견을 낸 정계선 재판관도 최 부총리의 재판관 임명 행위를 한 총리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 재판관은 “최 부총리가 한 행위를 한 총리의 위반 행위 판단에 유리한 사유로 삼을 수 없다”며 “게다가 헌재의 위헌 결정에도 최 부총리는 현재까지 마은혁을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고, 헌정질서 수호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데, 이는 한 총리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정 재판관은 “한 총리 파면으로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총리 탄핵 사건을 통해 윤씨 탄핵 사건을 바라보는 재판관들 의견을 엿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헌법학자는 “각하의견과 재판관 임명 거부를 적법하다고 본 기각의견은 법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대통령 탄핵사건 선고가 늦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측 윤씨 탄핵소추인단 관계자는 “김복형 재판관의 기각 의견이 가장 문제적”이라며 “헌법 재판관 임명 거부도 위헌·위법하지 않다는 재판관을 헌법 재판관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가 윤씨 탄핵 사건 선고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헌법학자는 “(윤씨 탄핵 선고가 늦어지는데) 차라리 인용 의견 4명, 기각 의견 4명이었으면 선고했을 것이다. 인용 5명, 기각 3명이니까 선고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재판관 공석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다수 의견은 선고기일을 미루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김선택 교수는 “한 총리 탄핵소추 청구는 기각됐지만 재판관 임명 거부가 위헌·위법하단 사실은 인정됐다”며 “한 총리는 국정운영을 하려면 위헌·위법성부터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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