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리니지M' 저작권 인정은 부당…웹젠은 성과 도용"
엔씨-웹젠 '저작권 침해' 사건 2심 판결문
"게임 규칙은 저작권 아닌 '아이디어'"
각 요소 조합해 얻은 성과는 보호 대상
"웹젠, 부정 경쟁 아니라면 성과 도용 만연할 것"
"R2M 출시 안 했으면 리니지M 매출↑ 가능성"
2025-04-01 09:03:06 2025-04-01 09:03:06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엔씨소프트(036570)웹젠(069080)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중지 소송에서 '리니지M' 저작권 침해 주장을 줄줄이 배척당했습니다. 법원이 게임 규칙에 불과한 '아이디어'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건 부당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다만 웹젠이 리니지M 구성 요소의 유기적 배열·조합을 그대로 모방한 건 부정 경쟁 행위라고 판단해 100억원대 손해배상을 선고했습니다.
 
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5-1부(재판장 송혜정)는 지난달 27일 웹젠의 부정 경쟁 행위를 인정한다며 엔씨에 169억1820만여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리니지M과 부정 경쟁한 게임 'R2M'의 서비스와 선전·광고·복제·배포·전송·번안도 금지했습니다.
 
다만 엔씨가 주장한 저작권 침해 주장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이범종 기자)
 
1·2심 "리니지M 규칙은 '아이디어'"
 
R2M은 웹젠이 2020년 8월 출시한 모바일 MMORPG입니다. 엔씨는 이 게임이 2017년 6월 출시한 리니지M 콘텐츠와 체계를 모방했다며 2021년 6월 소송을 내고, R2M 서비스와 배포 금지 등을 청구했습니다.
 
2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했지만, 저작권 침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리니지M의 각 요소는 기존 게임의 변형·차용이라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겁니다.
 
1·2심이 리니지M에서 유일하게 창작성을 인정한 건, 캐릭터 능력을 임시로 높여주는 '아인하사드의 축복' 체계입니다. 축복의 단계에 따라 상태 아이콘 색깔이 회색에서 초록색, 금색으로 변하는 식인데요. 웹젠은 R2M에 '유피테르의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기능과 표현을 적용했습니다.
 
다만 1·2심 모두 아인하사드의 축복마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근거는 대법원 판례입니다.
 
판례에 따르면, 게임은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선택·배열·조합으로 다른 게임과 확연히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져야 창작성을 인정받습니다. 법원은 게임 내 각 구성 요소의 창의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저작권 보호 대상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말·문자·음색 등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 형식입니다. 게임에 표현된 내용인 아이디어나 이론 등 사상·감정 자체는 그것이 독창성·신규성이 있어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법원은 두 게임의 유사성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주로 게임의 규칙으로, 아이디어에 속한다고 봤습니다. 엔씨가 저작권을 주장한 아인하사드의 축복 역시 캐릭터 능력치를 강화하는 게임 규칙 아이디어에 불과해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마저도 선행 게임에 존재하는 체계를 변용해 창작했다고 봤습니다. 또한 이 체계가 리니지M의 다른 규칙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게임 전개와 표현 형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밖에 장비 강화 체계와 아이템 컬렉션, 변신·마법 인형, 주요 UI 등 요소가 아이디어 차원을 넘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웹젠)가 피고 게임(R2M)에서 원고 게임(리니지M)의 표현 부분에 따라 이와 실질적으로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가 원고 게임 전체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어 "각 게임의 저작권에 기한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하는 데 전체적인 관념이나 느낌의 유사성은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표현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디어의 유사성으로 인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그 결과 저작권 보호 범위를 아이디어에까지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돼 부당하다"고 결론 냈습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이범종 기자)
 
'노력한 차용' 모방은 부정경쟁
 
그에 반해, 법원은 엔씨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선행 게임을 차용·변형한 체계를 웹젠이 상당 부분 베껴 부정 경쟁했다고 봤습니다. 법원에 따르면, 엔씨는 2015년부터 2022년 8월까지 모바일 MMORPG 연구개발에 약 10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법원은 특히 웹젠이 각 게임 구성 요소와 결합 체계가 고객 흡입력과 무관하다면서도, 각 요소와 결합 체계, 튜토리얼, 관련 UI 구성을 모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인적·물적 자원 투입과 위험부담을 회피하고, 게임 개발회사 입장에서는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내지 과금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각 구성 요소 및 결합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한 피고의 행위를 부정 경쟁 행위가 아니라고 한다면, 종국적으로 성과 도용 행위가 만연돼 국내 게임 업계의 발전에 역행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웹젠은 R2M 출시 후 일부 요소를 변경해 2021년 4월29일 이후 성과물 침해가 멈췄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부정 경쟁 행위를 희석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유피테르의 계약서 체계를 제외하고는, 각 구성 요소 및 결합 체계와 대응하는 부분의 나머지 각 구성 요소는 그 표현 방식, UI 배치 등을 미세하게 변경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이범종 기자)
 
R2M, 4년간 1691억 벌어
 
손해액은 웹젠이 2020년 8월부터 2024년 6월까지 R2M으로 얻은 국내외 매출액 1691억8209만2885원의 10%인 169억1820만여원으로 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모바일 게임 개발·공급업의 단순 경비율, 표준 소득률, 한계이익률 등을 고려했습니다.
 
또 R2M 출시 후인 2020년 3분기 리니지M 매출이 늘어난 점, 엔씨가 2023년 1분기 실적 발표 때 "경쟁작 출시로 트래픽에 별다른 변화가 관찰되지 않고 있고, (경쟁작의) 매출 및 트래픽 잠식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밝힌 점 등을 따졌습니다.
 
재판부는 "피고는 피고 게임 출시 후에도 원고 게임 매출 및 이익이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며 "피고 게임 출시가 없었더라면 원고가 더 많은 원고 게임 매출 및 이익을 올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2020년 당시 원고 게임 매출 증가율이 게임 업계 평균 성장률에도 미치지 않았으므로 피고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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