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이 사고 치면 은행이 책임?…은행권 대리업 논란
2025-07-28 06:00:00 2025-07-28 06: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우체국 등 은행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주거래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은행 대리업 도입이 순탄치 않을 전망입니다. 여야 의원들은 비은행기관이 은행대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금융사고와 이에 따른 손해배상 의무를 은행에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은행들은 대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 필요성에서는 공감하지만, 결국 위탁 수수료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탁 은행에 손해보상책임"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여야 의원들이 은행대리업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은행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금융사고 발생과 이에 따른 고객 피해 발생 때 책임 소재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은행대리업은 은행이 아닌 곳에서 은행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현행법상으로는 제3자 위탁이 제한돼 있어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은행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우체국 등 비은행기관이 은행대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부통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리업자의 영업 행위 규제 등이 관건으로 꼽힙니다. 여야 의원은 은행대리업자에 대한 내부통제 감독과 금융사고 책임 의무를 은행에 지우고 있습니다. 
 
이정문 민주당 의원과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을 보면 "은행은 은행대리업자가 은행대리업을 영위하면서 이용자에게 입힌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다만 "은행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서 조항이 달려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은행대리업자가 이용자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상대적으로 배상 능력이 충분한 은행에게도 손해배상책임을 부담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재 관리를 비롯해 출납,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 대응까지 은행 창구 직원들은 업무 숙련도 가 높은 반면 비은행 기관들은 위탁 받은 업무를 수행할 때 사고 대응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업권에서는 판매대리점의 불완전판매 행위에 대해 금융사에 전적인 책임을 묻고 있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다른 관계자는 "보험업권에서도 법인보험대리점 GA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전적으로 보험사에 전가하지 않고 있다"며 "보험사의 평가 관리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보험사 연대책임을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대리점의 불법행위에 대해 보험사는 통상적인 지휘·감독 범위 내의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고의적 사기나 중대한 과실에 대해 대리점에게 직접 책임을 추궁하도록 하고 있으며, 보험사가 적정한 관리 감독을 게을리 했을 경우 보험사 책임이 성립되는 구조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위험 부담 커질수록 수수료 상승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법에 근거해 금융사 손해배상 책임 의무가 따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는 금융상품판매대리·중개업자(은행 대리업자)가 대리·중개 업무를 할 때 금융소비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금융상품직접판매업자(은행)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금융상품판매대리·중개업자의 선임과 그 업무 감독에 대해 적절한 주의를 하고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한 경우 면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은행대리업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일본의 경우 은행대리업자에 대한 업무 지도, 건전한 운영 확보 및 은행대리업자가 고객에게 끼친 손해배상 책임을 소속 은행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의 은행대리업 도입은 업무 겸영을 금지하는 전업 의무와 출자 규제 등 다른 규제와 함께 은행권의 요구로 도입된 만큼 우리나라와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은행의 손해배상책임 부담에 대해서는 은행의 구상권 청구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물론 은행대리업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본인(은행)의 책임과 대리인(은행대리업자)에 대한 구상권이 별개의 법적 권리임을 은행법에 분명히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은행의 리스크 부담이 커질수록 각 은행의 위탁 수수료, 즉 비용 분담 분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은행의 공동 점포가 잘 안됐던 것도 각 은행이 임차 비용을 어떻게 나눌지, 기타 고정비는 어떻게 관리하고 부담할지 협의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은행이 부담할 리스크가 커질수록 위탁 수수료도 커지기 때문에 비용 부담 문제가 더 좁히기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은행대리업 도입 논의를 본격화했고, 올해 3월 구체적인 연간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올 상반기까지 은행과 은행업을 대신할 대리업자 등과 논의를 마치고 시범사업에 돌입할 구상이었습니다. 시범사업은 우선 예·적금 및 환거래 관련 대리업을 먼저 해보고 대출로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단계인 금융위원회와 은행대리업 당사자들간 논의가 예상보다 지연되면서 제도 도입 시기가 불투명해졌습니다. 
 
업계에서는 대행 업무에 대한 수수료 기준 등 구체적인 유인책이 마련돼야 참여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요.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산 구축과 실무 준비, 위탁 계약 내용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금융사고 책임, 비용 분담 문제는 위탁계약을 맺을 때 세부적으로 더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한 은행 창구 직원들이 고객들과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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