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유근윤 기자] 내란 연루 의혹을 받는 이완규 법제처장이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지명됐습니다. 이 처장은 윤석열씨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내란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12·3 계엄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열린 비밀회동에도 참석, 내란 연루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내란 행위에 연루된 자를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려고 하는 건 내란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는 비판이 거셉니다.
한 권한대행은 8일 오전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한다고 알렸습니다. 이달 18일 퇴임을 앞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입니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와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도 정식으로 임명했습니다.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목된 이완규 법제처장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참석을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처장은 내란수괴인 윤씨의 최측근으로 분류됩니다. 윤씨와는 서울대 법대 79학번,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입니다. 이 처장은 사법시험 합격 후 검찰에서 일하다가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습니다. 이후 그는 2020년 윤씨가 검찰총장이던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직무배제를 당했을 땐 윤씨의 소송 대리를 맡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윤석열정부가 출범하고선 35대 법제처장에 임명됐습니다.
하지만 이 처장은 지금은 내란 혐의를 받는 피의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12·3 계엄 이튿날인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 등과 비밀회동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직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회동 참석자 중 이상민 장관을 제외한 3명은 모두 휴대전화를 바꿔 증거인멸 의혹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
삼청동 안가 회동 관련해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지난해 12월19일 회동 참석자들을 증거인멸 및 내란방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습니다. 민주당도 올해 1월 내란 혐의로 이 처장을 고발했습니다. 공수처는 해당 사건을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에 배당해 수사 중입니다.
더구나 이 처장은 법제처장 신분임에도 윤씨에 대한 사법부 판단이나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해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습니다. 지난 1월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성윤 민주당 의원이 아스팔트 보수의 서부지법 폭동 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 처장은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 건 대답하기가 좀 어렵다. 수사가 진행돼 재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라고 답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서부지법 사태는 폭동이 맞다"라고 명확히 강조한 것과 비교하면 이 처장은 입장은 군색합니다. 한 권한대행이 이 처장을 헌재 재판관 후보로 지명하면서, 한 대행이 내란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8일 성명을 내고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석열의 내란을 적극 비호했으며, 비상계엄이 해제된 당일 저녁 안가 모임에 참석했던 인물"이라며 "내란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수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입장문을 통해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석열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대표적인 측근 인사로, 윤석열정부 내내 법제처장으로서 각종 쟁점에서 정권을 대변하는 법 해석을 내놓아 '법률 방패' 역할을 했다"며 "지난해 12월4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의결 당일 삼청동 안가에서 비밀 회동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고, 회동 직후 휴대전화를 교체한 정황까지 알려지며 계엄령 논의 및 증거인멸 시도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권한대행이 이 처장을 헌법재판관에 지명한 건 정치적 계산이 다분히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앞서 한 대행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보류하면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2월27일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즉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행위는 위헌·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헌재 선고 이후에도 한달이 넘도록 마 후보자 임명 요구에 침묵하던 한 권한대행이 느닷없이 마은혁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에 정식으로 임명함과 동시에 이 처장과 함상훈 부장판사를 새 재판관으로 지명한 겁니다.
법조계에선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일에 대해 비판 목소리가 큽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내란에 적극 동조하고 한덕수의 위헌 행위를 비호한 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겠다는 셈"이라며 "광장의 힘으로 윤석열을 탄핵한 이 시점에서, 이완규 법제처장은 시민의 뜻에 부합하는 헌법재판관도 아니고, 헌정질서를 수호할 수 있는 헌법재판관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권한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후보자를 임명하는 행위는 형식적 임명권을 행사에 그치지만, 대통령이 지명해야 할 헌법재판관을 직접 지명하는 것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은 9명으로 구성됩니다. 이 중 3명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대법원장과 국회가 각각 3명씩 후보자를 추천할 권한을 갖습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지명해야 할 헌법재판관 지명은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권한대행의 행위는 차기 정부의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박탈하는 행위"라며 "윤석열 탄핵 뒤 정국을 안정시키고, 선거 관리에 주력해야 할 한 권한대행이 또 다른 정치적 의제를 이야기하면서 정치싸움을 부추기고 있다"고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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