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복 메시지 없이…윤, '사저정치' 시동
"자유·주권 수호로 관저 지켜줘"…퇴거 때도 '선동 정치'
확인된 콘크리트 지지율…대선 후보들 '윤심' 호소까지
2025-04-11 17:49:09 2025-04-11 19:19:49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끝내 승복은 없었습니다. 헌법재판소(헌재)의 만장일치 '파면'에도,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관저를 나와서도 극렬 지지층에 대한 메시지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씨의 반성 없는 행보는 '관저 정치'에서 '사저 정치'로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헌·위법적 '12·3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조기 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로 향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웃음 머금고 지지자들과 포옹까지
 
윤씨는 파면 일주일 만인 11일 오후 5시 10분께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관저 앞에 도열하고 있던 대학생들과 만나 악수를 나누고 포옹하며 지지자들을 격려했습니다. 특히 5분가량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며 미소를 머금었고 계속해서 손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지지자들은 '윤카(윤석열 각하) 어게인' 등을 외치며 그를 맞았습니다. 
 
대통령실을 통해 낸 서면 메시지에서도 반성은 없었고, 지지자들에 대한 메시지만 남겼습니다. 그는 "지난 겨울에는 많은 국민들 그리고 청년들께서, 자유와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한남동 관저 앞을 지켜주셨다. 추운 날씨까지 녹였던 그 뜨거운 열의를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면서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함께 꿈꾸었던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도 없었고, 일반 국민에 대한 사과도 없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배웅하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윤씨 부부는 곧바로 서울 서초구의 아크로비스타로 이동했습니다. 윤씨는 2022년 5월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를 나와 관저가 마련되기까지 아크로비스타에서 6개월가량 출퇴근한 바 있습니다. 
 
윤씨의 행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비교됩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탄핵 선고 56시간 만에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윤씨와 마찬가지로 금요일 오전에 파면됐는데, 삼성동 사저의 수리를 문제로 이틀 뒤인 일요일 저녁 이사했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승복 메시지를 내지 않은 채 지지자들을 선동한 모습은 같습니다. 
 
문제는 파면 이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윤씨에게는 '관저정치의 장'이 됐다는 점입니다. 국민의힘 지도부 투톱인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윤씨 파면 결정 직후 곧바로 관저로 향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씨는 국민에 대한 '사과' 메시지 없이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당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를 잘해서 꼭 승리하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후 관저는 노골적인 정치의 공간으로 변질됐습니다. 지난 5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관저를 방문한 사실이 전해졌는데요. 윤씨의 제안에 따라 성사된 만남이었습니다. 윤씨에 대한 탄핵 반대에 앞장선 나 의원에게 윤씨는 "어려운 시기에 역할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9일에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까지 불러들였습니다. 윤씨는 전씨를 만나 "지난겨울 석 달 넘게, 연인원 수천만명의 2030 청년들과 국민들께서 광화문과 여의도,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탄핵 반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섰다"고 했습니다. 극렬 지지자들만을 위한 메시지였습니다.
 
심지어는 민간인 신분인 윤씨가 지난 일주일 동안 관저 내 대통령실 소속 인원들을 동원해 '환송 파티'까지 열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떠나는 순간까지도 공적 마인드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횃불청년단이 11일 서울 서초동 윤석열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윤 전 대통령 지지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옥중→관저→사저, '윤석열의 입김'
 
사저 정치도 정해진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윤씨는 12·3 비상계엄 이후 반복적인 여론전을 펼쳐왔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를 앞둔 관저에서도, 현직 대통령으로는 사상 첫 체포된 뒤 옥중에서도, 파면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점은 옥중 정치였습니다. '1·19 서부지법 폭동' 이후 윤씨는 청년층을 겨냥한 메시지에 주력했습니다. 서부지법 폭동 주요 가담자의 절반가량이 2030 세대였던 점을 겨냥한 겁니다. 탄핵정국에서 2030 세대는 윤씨에 대한 지지세력으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원조 친윤(친윤석열)계도 줄지어 서울구치소를 찾아 접견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탄핵 반대의 선봉에 섰습니다.
 
관저와 구치소에서 이어진 윤씨의 여론전은 일정 부분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습니다. 헌재의 판결이 지연되면서 보수층은 더욱 결집하기 시작했고, 기각 혹은 각하에 대한 예측도 난무하며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사저로 이동한 이후 행보는 대선 개입이 유력합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얼마 전 윤씨를 관저에서 만났습니다. 이 지사에 따르면 윤씨는 "이번 선거에서 우리 당이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며 최선을 다하시겠다면서, 제게도 힘껏 노력해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윤씨는 이 지사에게 사람을 볼 때 '충성심'이 중요하다고 강조까지 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씨는 14일 형사재판 첫 공판기일에 참석한 뒤 매주 형사재판을 받을 예정입니다. 형사상 불소추특권이 사라진 윤씨는 검찰로부터 추가 혐의로 기소되거나 증인 회유 시도 등 새로운 혐의점이 발견될 경우 재차 구속될 가능성이 있는데요. 
 
윤씨는 여론전을 위해 지지자들을 동원하고 대선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행보를 보일 것으로 관측됩니다.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는 셈입니다. 탄핵 정국에서 콘크리트 보수층의 영향력도 확인된 만큼, 당내 대선 후보들도 '윤심'에 대한 호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제 영향력 행사도 우려됩니다. 이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윤씨의 46년 지기이자 내란죄 피의자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습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배후에 윤씨가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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