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국내 대표기업들 가운데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자는 글로벌 캠페인) 대상을 준다면, 그 영예는 LG에너지솔루션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중 RE100 이행률이 56%(2023년 기준)로 1위인 까닭입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많게는 10%의 이행률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업계 1위를 넘어 국내 1위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국내 배터리, 완성차 업계 RE100 현황 (그래픽=뉴스토마토)
기후위기 시대, RE100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고객사의 요구에 충족하려면 RE100 이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ESG(환경·책임·투명경영) 관점에서도 RE100은 필수 과제가 된지 오래입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이나 투자기관도 RE100을 포함한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첨단 산업의 총아로 불리는 배터리 업계도 이러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응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입니다. 지난 2021년 LG화학에서 분사한 뒤 곧바로 배터리 업계 최초로 RE100에 가입한 LG에너지솔루션은, RE100 목표시점을 2050년이 아닌 2030년으로 설정하면서 적극적인 실천에 나서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더 활성화돼 있는 해외 사업장에선 이미 RE100을 달성한 곳도 있습니다. 이미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과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100% 전환 완료하는 등 글로벌 생산공장의 이행률은 61%에 달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삼성SDI는 같은 해 기준으로 RE100 이행률 27%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 RE100에 가입한 데 비해 빠른 이행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2023년에는 본사가 있는 기흥사업장 옥상에 0.3MW(밀리볼트)의 태양광발전 시설을 완공해 매년 300MWh(메가와트시)의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고 있는 삼성SDI는, 올해까지 재생에너지 전환율을 72%로 높일 계획입니다.
SK온은 3사 중 가장 뒤쳐져 있습니다. 아직 RE100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ESG 보고서에도 구체적 이행 방안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203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고, 2035년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는 내부 목표를 세워둔 상태입니다. SK온 관계자는 “RE100은 일종의 이니셔티브, 선언이기 때문에 가입하지는 않았다”면서 “RE100과 같은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사업장 온실가스 배출량 저감 활동을 검토하고 REC 구매 등 재생에너지 도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7회 세계전기차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EVS37)'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CTP(셀투팩) 배터리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배터리 업체들은 재생 에너지 시설 구축, 녹색프리미엄·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등을 통해 RE100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녹색프리미엄은 사용 전력만큼 한국전력에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구매해 사용한 뒤 인증받는 제도입니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활용해 에너지가 공급됐음을 증명하는 인증서로 한국형 RE100 이행 방안 중 하나입니다.
현대차 12.7%·기아 9% 이행률
비교적 빠른 이행률을 보이는 배터리 업계와 달리 자동차 업계의 RE100 이행률은 현대차그룹을 제외하면 아직 첫 발도 떼지 못한 형국입니다. 재생에너지 이행을 위한 여력이 마련되지 않아 RE100 가입을 추진하지 못하면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2022년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RE100에 가입한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은, 2045년까지 글로벌 전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2023년 기준 현대차는 12.7%의 재생에너지 이행률을 보였고 기아는 9%를 기록했습니다. 현대차 지속가능 보고서에 따르면 체코 사업장은 이미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완료했고, 튀르키예는 68%, 인도 24%, 브라질 41%를 달성하는 등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점차 늘리고 있습니다. 이들 해외 사업장은 2025년 RE100 달성이 목표입니다.
반면 국내 중견 완성차 업체들은 RE100 가입은커녕 초기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해외 공장이 거의 없는 KGM과 GM한국사업장, 르노코리아 등은 비용 부담으로 RE100 이행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 재생에너지 단가(태양광 약 174원/kWh)는 원자력(55원/kWh)이나 석탄(141원/kWh)보다 높아 자금력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전환이 쉽지 않은 탓입니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조달과 생산 공정 전환을 위해서는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한 점도 현실적인 어려움입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대표적인 탄소배출 사업장에서 RE100 등 탄소중립은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며 “차의 원료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제로로 만들어야 하는데, 인프라를 갖춰지지 못한 국내에선 사실상 어렵다”고 했습니다.
“지원과 재생에너지법 뒷받침돼야”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적 지원과 법안 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정책과 시설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정부가 법인세와 산업용 전기 비용 등 기업 운영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이런 것들이 마련되지 않으면 기업이 국내를 떠나게 된다. RE100 세제 혜택 등 정부가 좀 더 노력을 해서 친환경적으로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도 “기업들이 갹출해 재생에너지 펀드를 출자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에서 인프라나 법제화 등의 지원을 하지 않으면, 결국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산업특허소위에서 처리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업계의 관심이 쏠립니다. 개정안은 정부가 공영주차장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한 재정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입니다. 설치 비용 일부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며, 저리 융자 프로그램과 세제 혜택(법인세·소득세 감면)으로 기업들의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전력 판매와 REC 거래를 지원하고,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기술 가이드라인과 점검 체계를 제공해 의무 이행을 원활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와 이에 따른 공급이 늘면서 공급 단가가 내려갈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에서 삼성SDI 부스를 찾은 참관객들이 원통형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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