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멀티모달 시각 보조 시스템 개요. (사진=Nature Machine Intelligence)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카메라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착용형 안내 시스템이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한층 더 자율적이고 안전하게 돕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 <네이처 머신 인텔리전스(Nature Machine Intelligenc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 장치는 실제 환경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실험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상하이교통대학교, 홍콩 과기대, 홍콩 AI 연구원 등 여러 연구기관에서 구성된 합동 연구팀은 시각장애가 있는 20명의 참가자를 모집하여 두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우선 ‘실내 미로 실험’은 25미터 길이의 실내 미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참가자들은 한 번은 기존의 흰 지팡이를 사용해, 또 한 번은 새롭게 개발된 AI 시스템을 착용한 상태에서 동일한 경로를 통과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AI 시스템을 사용했을 때 이동 거리와 경로 탐색 시간이 25% 단축되어 더 빠르게 이동을 마쳤습니다. 이 시스템이 사용자의 주변 환경을 빠르게 분석하고, 방향이나 장애물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다음 실험은 좀 더 복잡한 실제 환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8명의 참가자가 도심의 인도, 또는 가구가 어지럽게 놓인 회의실 같은 현실적인 공간에서 이 장치를 착용한 채 걷는 실험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착용자들은 장애물을 더 원활하게 피하고, 안전하게 경로를 따라 이동했습니다. 특히, 복잡하게 배열된 공간에서 AI 시스템이 감지한 정보는 골전도 이어폰과 손목에 착용된 인공 피부 패치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어, 방향 제시 및 물체 감지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물체가 가까워졌을 때 손목에 진동이 울려 즉각적인 회피 동작을 유도하는 등, 촉각 기반 피드백이 유용하게 작용했습니다.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중국 상하이 교통대학교의 인공지능 연구원 레이레이 구(Leilei Gu) 박사의 말대로 “이 시스템은 눈을 부분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눈 대신 느끼는 감각”…다양한 기술의 융합
이번 시스템은 단순한 영상 정보 해석을 넘어, 청각(골전도 음성 안내), 촉각(진동 패치) 등 다양한 감각 채널을 동시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기존 기술과 차별화됩니다. 사용자는 “계속 직진하세요”, “오른쪽으로 돌아가세요”와 같은 지시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으며, 손목의 진동을 통해 보이지 않는 장애물의 존재를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AI는 단순히 장애물을 감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안전한 경로를 실시간으로 계산해 사용자가 최적의 경로를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이 연구는 효율적인 내비게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특히 낯선 환경에서 이동할 때 시각장애인에게 더 높은 수준의 독립성과 자신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자율적 생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술 혁신
물론, 이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연구팀은 장치의 무게를 줄이고, 디자인을 더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 사용자들이 더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개선을 계획 중입니다. 일부는 미래에 콘택트렌즈에 카메라를 내장하는 기술까지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현재 실험이 통제된 환경과 제한된 수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여러 연령대와 실제 환경 조건을 반영한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레이레이 구 박사는 “이 시스템은 단순한 보조 기기를 넘어, 시각장애인들이 더욱 자율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라고 연구의 효용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연구를 소개한 스페인 과학 미디어 센터(Science Media Centre Spain)는 ‘시각장애인들이 여러 보조 장치를 사용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는 것, 특히 사용자가 여러 장치를 휴대해야 하는데, 무겁거나 부피가 클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사용자가 다양한 출처에서 얻은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해서 인지 과부하가 발생하여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 이들 장치 사용이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인 사회적 낙인도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때로 인간의 감각을 보완하거나 확장할 수 있습니다. 멀티모드 기술을 활용한 이런 연구와 개발이 계속 진행되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시각이라는 중요한 감각을 대체하는 데 한 발 더 다가선 의미 있는 시도이며,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과 삶의 질 향상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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