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의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감사원은 최근 금감원이 금융사 검사 결과 확정 전 중간발표를 하는 것에 대해 적정성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감원은 법적 검토를 거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만큼, 검사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를 적발한 경우 앞으로도 중간발표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입니다.
금감원 감사 벼르는 감사원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감사원은 최근 금감원을 대상으로 감사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에는 '검사 제재 확정 전 배포한 보도자료'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감원이 제재 중인 사안에 대해 잠정 결과를 중간 발표하는 것이 적정한지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금감원은 일단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중간 발표를 통해 다른 금융기관이 참고할 만한 피드백을 제공한다는 차원"이라며 "앞으로도 중대한 문제가 발견되면 잠정적인 내용을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금감원 정기검사를 받고 있는
BNK금융지주(138930)와 검사 예정인 신한금융지주(
신한지주(055550))에서도 공통된 형태의 비위가 포착된다면 중간발표를 통해 내용을 공개할 계획입니다.
이복현 금감원장 취임 후 금감원은 검사 중인 사안에 대해 여러 차례 중간발표를 해왔습니다. 지난 2022년 우리은행 횡령 사고를 시작으로 경남은행 횡령 사고,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대구은행 불법 계좌 개설 등이 있습니다. 관련 보도자료에는 제재 정당성, 향후 제도 개선 방향, 내부통제 법규 등이 담겨 있습니다
다만 이 원장 이전에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 펀드 등 중대 위반 사안에 대한 중간발표는 종종 있었습니다. 금감원뿐만 아니라 정부기관 대부분은 중요 정책 발표에 대해 공개 브리핑과 백브리핑을 진행해왔습니다. 최근 수년간 수백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횡령 등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면서 중간발표가 빈번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감사원이 최근 검사 중간발표 관련 자료 제출을 금감원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감사원 입구를 시민이 지나가는 모습. (사진=뉴시스)
하지만 금융사들은 금감원의 중간검사 발표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금감원의 중간 또는 잠정 검사 결과가 모두 제재나 문책으로 연결되는 게 아닌데, 금융사 입장에서는 나중에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 이미 입은 타격을 회복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고의 규모와 경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검사 결과를 받는 데 까지 일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며 "외부에 공개한 잠정 결과가 금융사에 미치는 악영향은 누가 보상할 것이냐"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2011년부터 '중간발표' 이미 시행
금감원은 지난 2월 KB·우리·농협금융 정기검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각 금융지주 및 은행에서 적발된 핵심 위규 사례를 선별해 발표했습니다. 금융사고·지배구조 등을 공통 항목으로 분류한 다음 'A사' 'B사' 식으로 익명으로 처리해 발표했습니다. 정기검사의 경영실태평가 중 리스크관리·경영관리 등 다른 항목에 대해서는 일일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금감원에서는 망신 주기 또는 여론 형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당시 이 원장도 "누적된 문제를 특정 은행 문제로 한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은행권에 만연한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점을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가감 없이 문제를 드러내 개선 방향을 모색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금융위원회설치법에 명시된 '청렴 및 비밀 유지 의무'로 금감원의 중간검사 결과 발표를 문제 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해당 의무 조항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거나 직무상의 목적 외에 이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피감기관이 제재를 회피할 수 있도록 이익을 제공할 목적으로 감독·검사 관련 정보를 흘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금감원 다른 관계자는 "금융시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거나 재판 등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면 잠정 결과 공개는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맞다"며 "그렇지 않은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큰 공통 문제에 대해서는 검사 기간이 길어지면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금감원의 검사 중간발표가 시작된 시점은 현대캐피탈 해킹 사태가 벌어진 지난 2011년입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금감원에 대한 상급 기관의 압박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이 원장이 금융위를 거치지 않고 중요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금융위 패싱' 논란이 일었습니다. 상급 기관인 금융위가 이 원장의 퇴임 이후를 벼르고 있다는 소리가 공공연히 들려왔습니다. 최근 이 원장이 "상법 개정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주무부처인 법무부와 척을 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이 우리금융 경영평가등급과 홈플러스 사태, 상법 개정안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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