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논병아리는 노처럼 생긴 ‘판족’을 지녔다. 발가락마다 독립된 판이 있어 물을 힘차게 저을 수 있으며, 이 덕분에 날기 전 수면 위를 오래 달릴 수 있다.
4월, 빠알간 해가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는 아침입니다. 갈대숲 사이, 고요한 호숫가에서 뿔논병아리(Great crested grebe, Podiceps cristatus) 한 쌍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본 적 있나요? 화려하게 머리깃을 세우고 물 위를 미끄러지듯 서로에게 다가가 잔잔한 파문을 만들며, 파장 사이에서 노니는 두 마리의 새를요. 공손히 인사를 건네듯 곧게 뻗은 목을 내밀고 한 마리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면, 다른 한 마리도 도리도리 고개를 흔드는 동작으로 화답합니다. 이윽고 수컷이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면 암컷도 날개를 활짝 펼칩니다. 각자 부리로 수초를 문 채 수면 위로 떠올라 ‘판족’이라 불리는 발로 물을 차며 가슴을 마주하고 격정적으로 춤을 춥니다.
일명 ‘뿔논병아리의 탱고’입니다. 서로 뺨을 맞대고 고개를 왼쪽 오른쪽 돌려가며 춤을 잇습니다. 이 열정적인 춤의 끝에서 수컷은 암컷에게 물고기를 선물합니다. 물고기가 없을 때는 갈대 뿌리나 작은 가지라도 물어서 건넵니다. 암컷이 이를 수락하면 둘은 사랑을 나누고, 갈대밭 가장자리에 함께 살아갈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쌍의 뿔논병아리는 갈대와 수초를 부지런히 물어다 나르며 둥지를 짓습니다.
이 뿔논병아리들은 보금자리로 갈대숲을 참 좋아합니다. 바람을 막아주고 천적의 눈을 피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뿔논병아리들의 둥지가 완성되고 알을 품을 때면, 갈대숲은 겨울의 마른 갈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하며 새로운 줄기와 잎이 자랍니다. 하여 뿔논병아리들의 둥지는 한층 더 은밀하게 보호가 됩니다. 알을 품는 암컷 곁에서 수컷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잠수를 통해 둥지를 드나드는데, 이는 포식자로부터 둥지의 위치를 위장하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또 암컷은 둥지를 비울 때, 알 위에 갈대 수풀의 수초를 살포시 덮어두기도 합니다. 둥지를 감추기도 하고 큰 일교차 속에서 알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호수를 유영하던 뿔논병아리 한 쌍이 마주쳤다. 두 마리의 움직임이 마치 사랑의 하트를 그리는 듯하다.
이렇게 부화한 어린 뿔논병아리들은 대부분의 물새처럼 부모 새를 바로 따라나서며 먹이활동을 합니다. 부모새 주위에서 유영하다가 지치면 어미 등에 어부바를 합니다. 여러 마리가 한번에 어미 등에 올라타면 어미는 물에 잠길 듯 휘청이기도 하지만, 어린 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수컷은 하루에도 수십 마리의 물고기를 잡아오는데, 모든 식구들을 배부르게 먹이려면 하루에 최소한 백 마리가 넘는 물고기를 사냥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뿔논병아리가 터를 잡은 하천은 물고기가 풍부한 건강한 습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뿔논병아리 부부는 한 해에 두 차례 번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먼저 부화한 뿔논병아리들이 부모 새와 함께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도 합니다. 부모 새와 먹이도 같이 잡고, 부모 새처럼 동생들을 등에 태워주며 놀기도 해요. 이런 가족 중심의 생태는 뿔논병아리가 안정적으로 개체수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면, 계절 따라 어린 뿔논병아리들의 깃도 바뀝니다. 붉은 흑색의 깃은 옅어지고, 머리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이 흰색이 됩니다. 바로 겨울 깃으로 바뀌는 거예요. 계절이 변하는 동안 두 마리였던 뿔논병아리는 대가족을 이루고요, 많아지는 가족 구성원에 맞춰 넓은 습지로 이동합니다. 부모처럼 장성한 뿔논병아리 어린 새들은 다른 가족 무리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릴 짝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춤을 추고 또 다른 가정을 이루며 뿔논병아리들은 계속 세대를 이어갑니다.
이제,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한국의 습지는 건강함을 많이 잃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습지가 줄었고, 남아 있는 곳마저도 뿔논병아리가 터를 잡을 만한 곳이 드뭅니다. 다행인 것은 도심 호수에서 번식하는 뿔논병아리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봄과 여름 호수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뿔논병아리의 춤사위와 어부바 등을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됩니다. 뿔논병아리,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요.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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