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선후보들의 기후위기 토론을 기대한다
2025-04-30 06:00:00 2025-04-30 06:00:00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그리고 탄핵 국면으로 치닫던 2025년 3월, 경북과 경남 지역에 발생한 대형산불은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발생시킨 후에야 사그라들었다. 산불이 꺼져도 재난은 남았다. 30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치는 등 75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주택 3천여동이 전소되고, 국가유산 30건, 농업시설 2천여건 등 시설 피해도 컸다. 집과 일터를 잃은 이재민들이 원래 삶으로 돌아가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안타깝게도 완전한 회복과 복원은 요원해 보인다. 산불 피해 면적은 서울 면적(6만 520㏊)의 1.7배에 이르는 10만 4,000㏊로 집계됐다. 이전까지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됐던 2000년 동해안 산불(2만 3,794㏊)보다 4배 이상 큰 사상 최대 규모다.
 
2024년 말에는 계엄령이라는 ‘정치 재난’이 닥쳤다. 그리고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 폭우, 폭설 등 이상기후로 1년 내내 ‘기후 재난’을 살았다. 전국적으로 폭염이 한 달(30.1일) 동안 이어졌고 열대야일수는 24.5일로 관측 역사상 압도적 1위였다. 제주에서는 무려 47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졌고, 서울도 34일 동안 열대야가 끊이지 않았다. 6월부터 이르게 시작된 폭염은 9월까지 이어져 추석 연휴에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질병관리청에 따른 온열질환자는 3,704명, 사망자는 34명으로 2018년 사상 최악의 폭염 이후 두 번째로 많았다. 여름철 강수의 약 80%가 장마철에 몰리면서 한꺼번에 내린 폭우가 인명과 재산 피해를 키웠다. 11월엔 때 이른 폭설이 내렸다. 서울과 인천, 경기, 수원 등은 11월 적설 최고 기록을 세웠다. 높은 해수면 온도와 낮은 대기 온도 간 차이로 발생한 무서운 ‘습설’이 쏟아져 시설물이 붕괴하고 나무가 쓰러지면서 인명 사고가 잇따랐다.
 
농민들은 양곡관리법을 연거푸 거부한 윤석열 정부와 계엄령에 분노했고, 남태령 고개를 넘었다. 그리고 이상기후로 한 해 내내 피해를 보고 있었다. 대설·한파와 일조량 부족, 우박, 이상 고온과 장마철 폭우 등 예상할 수 없는 이상한 날씨는 흉작의 원인이 됐다. 2월에는 일조량 감소와 겨울 폭우로 마늘과 멜론, 딸기 등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꽃이 피는 시기인 3월에는 갑작스럽게 반복된 저온과 고온으로 매실은 냉해를 입었고 양파는 생육이 불량해졌다. 5월에는 때아닌 집중호우로 수확을 앞둔 보리와 밀, 귀리 등이 쓰러졌고, 우박과 강풍은 사과와 배, 키위 등을 망가뜨렸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농작물 피해 규모는 9,450㏊, 폐사한 가축은 102만 2천 마리에 달했다. 수확을 앞둔 가을에는 이상고온으로 벼멸구가 창궐해 1만 7,732㏊의 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수산업 피해도 컸다. 넙치, 전복, 멍게, 굴 등의 양식 생물이 대량 폐사하면서 발생한 피해는 1,43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으로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2025년 6월 3일 치러진다. 그리고 산불과 폭염, 폭우 등으로 인한 기후 재난이 일상화되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기후환경단체들은 대선 후보자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재난을 넘어 경제, 산업, 일자리, 주거, 식량 등을 아우르는 전 사회적 위기인 만큼 대선후보들이 가지고 있는 비전과 구체적인 해법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으로 기후 대응을 단일 의제로 대선후보 TV 토론회 개최를 촉구하고 있다. 기후정치바람이 2023년에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33.5%가 ‘기후유권자’라고 하니 대선 후보자들의 토론회 단일 의제로 손색이 없다. 앞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때에도 청년기후단체들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기후위기 원포인트 토론회’ 개최를 요구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RE100’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도가 이슈화됐던 대선 토론회를 거쳐 RE100를 모르던 대선후보가 대통령이 되었고, 한국의 기후·에너지 정책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갔다.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는 2024년 8월 29일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에서 탄소중립기본법의 중장기 감축목표 조항에 대해 역사적인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2031년 이후 2050년 탄소중립 시점까지 중간적인 감축목표를 법률에 규정하지 않은 것이 미래의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여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031년 이후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헌재가 제시한 ‘과학적 사실과 국제적 기준에 근거하여, 전지구적 감축노력에 우리나라가 기여해야 할 몫에 부합’하게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2035년을 목표로 하는 NDC 최종안을 확정해 올해 9월 중 유엔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치의 부재와 위기는 모든 것을 법의 판단에 외주화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이제 헌재의 시간은 가고 다시 정치의 시간이다. 대선후보들의 책임 있는 토론을 기대한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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