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비밀회의)가 일주일 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에레델라세라>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의 일대기를 다룬 전면 기사를 게재해 눈길을 끕니다. 유 추기경은 한국인 최초로 교황청 장관직에 임명됐으며, 차기 교황 후보로도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곁에서 활동하며 얼굴을 알리고 인맥을 쌓았다는 부분이 강점으로 꼽힙니다.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가 지난 28일(현지시간)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의 신앙 일대기를 조망하는 전면기사를 게재했다. (사진=코리에레델라세라 지면 캡처)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지난 28일(현지시간) '전쟁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평화에 대한 헌신: 라자로의 끈질긴 믿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유 추기경의 신앙 일대기를 조명했습니다. 지난 22일 12명의 차기 교황 유력 후보군 중 한 명으로 유 추기경을 거론한 지 엿새만에 그의 신앙 생활과 사제 활동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것입니다.
코리에레델라세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력한 후계자로 여겨지는 73세 라자로의 모습에서 겸손과 삶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며 "급변하는 아시아의 '변방'인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점은 확실히 교회의 미래에 자산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인 동시에 교황청 내부에 탄탄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는 매체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차기 교황 선출이 임박한 시기에 유 추기경의 '신앙 여정'을 정리하는 기사가 등장한 점은 '첫 한국인 교황' 탄생의 기대감을 높입니다.
앞서 코리에레델라세라는 12명의 유력 후보 중 11번째로 유 추기경을 소개하면서 "남북한 화해를 모색한 '포콜라레 운동'의 일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유 추기경이 1979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고, 2021년 대전교구장(주교)으로 지내던 중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성직자부 장관으로 발탁됐다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대전교구장 시절 4차례나 북한을 방문하며 남북 교류에 힘썼다며 유 추기경의 '평화' 지향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유 추기경이 성직자 활동의 대부분을 조국의 평화를 위해 바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부각했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알기도 전에 고아가 됐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한반도 평화가 유 추기경에게는 유독 남다른 의미가 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유 추기경이 '평화에 대한 기도와 희망으로' 북한에 4번 가본 적이 있다며 그의 남북 화해에 대한 열망을 또 한 번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후 애도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교황님의 기도 가운데 한국에 관한 기도에는 남과 북이 모두 포함된 기도였음을 기억한다. 화해와 평화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선이 있다고 믿으셨던 교황님의 말씀이 오래 우리 안에 살아있길 함께 기도하자"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끊임없는 애정을 보여왔습니다.
이 밖에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유 추기경이 사제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운명과 같았다고 묘사했습니다. 카톨릭 재단의 학교(논산대건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16세의 나이에 세례를 받았음에도 신학교 진학은 가족들의 반대로 쉽지 않았는데, 일반대학교에 시험을 보겠다는 '선의의 거짓말'로 자신의 확고한 결심을 이뤘다는 겁니다.
또한 유 추기경이 라자로를 자신의 세례명으로 선택하게 된 배경에도 예수의 축복으로 부활한 라자로 성인처럼 '빛을 다시 보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유 추기경은 2003년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주교로 임명됐을 때에도 "나는 세상의 빛이다(Lux Mundi)"를 사목 표어로 정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밝히는 신앙인의 사명을 되새겼습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24일(현지시간) 교황청 성직자부 청사에서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지난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가 엄수된 이후 바티칸은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물밑 작업이 한창입니다. 다음달 7일 개시되는 콘클라베에 앞서 추기경단 회의 등이 진행되는데, 투표에 참여하는 전세계 만 80세 미만 추기경 135명이 모두 후보가 될 수 있어 로비와 여론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까닭입니다.
특히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하는 추기경단의 80%가 2013년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인사들이라 상당수가 서로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란, 알제리, 몽골 등 다양한 출신지의 추기경들이 새로 보임돼 유럽 출신 추기경 비율은 2013년 50% 이상에서 39%까지 낮아졌습니다. 차기 교황을 쉽사리 예단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배경입니다.
유 추기경도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최근 추기경 회의에서 진행된 3분 발언은 긍정적인 호응을 얻은 것으로도 전해졌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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