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결국, 희망은 시민
2025-03-26 06:00:00 2025-03-26 06:00:00
"진짜 그 순간에는 우리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어요" 
 
계엄의 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던 박종철씨는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40여년 만에 마주한 계엄은 그에게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대학 시절 마구잡이로 시민들을 구타하던 군인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 앞에 선했다. 당장 국회로 가자는 부인의 말을 선뜻 따르지 못했던 이유도 그 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였다. 그럼에도 그날 밤 그는 국회 앞을 지켰다. "집사람이 위험할까봐, 집사람을 지키러 갔다"며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고 손사래쳤지만, 대한민국의 운명이 벼랑 끝에 몰려있다는 사실을 그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국회로 달려갔던 그는 시민에게서 희망을 봤다고 했다. 45년전과 비교해 한층 높아진 시민 의식 덕분에 비정상적인 상황을 하루 만에 되돌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여의도로 향했던 부인 김혜경씨도 자식 세대에 희망을 물려줄 수 없을까봐 거리로 나섰지만, 되레 젊은이들로부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응원봉을 들고 즐기듯 집회에 참여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미래가 느껴졌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때만해도 일상은 금방 되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100일이 넘게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국회로 진입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된 탓에, 외국인들의 눈에는 여행을 가기엔 위험한 나라로 비춰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날로 더 깊어졌다. 가장 심각한 것은 극단주의 세력들로 반쪽난 나라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봄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시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집회에 나설 부모들을 위한 '키즈버스' 운영자,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고 배를 채울 음식을 제공하는 포장마차 상인 등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이들 덕분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 자발적 선행에 십시일반 쌓이는 도움은 희망이 기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는다. 
 
그래서 감히 이들을 '시민 영웅'이라 칭하고 싶지만 모두가 영웅이라는 단어는 부담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자신들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본인은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동시에 이들은 소수의 정치인 때문에 피땀 흘려 일군 우리나라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정치인들이 좀 더 국민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공통된 바람도 표했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언제나 시민들의 힘으로 이겨냈다. 가까이는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던 'IMF 사태'를 극복한 금 모으기 운동이 있고,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민주화 운동과 국채보상운동, 동학농민운동 등에서 민초들의 저력이 확인된다. 
 
가장 쉽게 끝날 것 같았던 대통령의 파면은 '역대 최장 평의기간'이란 기록을 경신하며 시민들의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란의 위기는 시민들의 힘으로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유독 길게 이어지는 꽃샘추위가 물러갈 때 쯤이면 대한민국의 봄도 같이 오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함께다.  
 
김진양 영상뉴스부장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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