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12·3 계엄이 발생한 후 내란 수괴 윤석열씨가 재판을 받는 내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엔 '수사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공수처가 윤씨를 체포하고 수사 과정에선 어설픈 실패가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공수처의 무능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논란을 공수처 탓으로만 돌리기도 힘듭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원래 구상했던 공수처 규모와 권한이 쪼그라든 데 원인이 있다는 겁니다. 공수처 정원은 절반으로 줄었고, 공수처의 기소 범위는 축소됐습니다. 공수처가 대통령을 직권남용죄 혐의로 수사했지만, 기소는 검찰이 맡게 되면서 내란 수사 과정 내내 검찰과 공수처 간 권한과 절차를 두고 논란이 됐던 배경입니다.
불완전한 입법에 수사 시비는 지속…구속 취소 빌미 줘
12·3 계엄 사태 직후 모든 시선은 공수처로 쏠렸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운신의 폭이 좁아진 탓입니다. 내란죄를 수사해야 할 경찰은 조지호 경찰청장 등 조직 수뇌부가 게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검찰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비상계엄 심의 국무회의를 참여하고, 계엄 이튿날엔 삼청동 안가회동에 간 걸로 확인된 터라 흘러가는 상황의 눈치를 봐야 할 판이었습니다. 이에 공수처는 사건 이첩권을 발동했고, 내란 수사는 공수처 몫이 됐습니다. 공수처로선 독립 수사기관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가 온 겁니다.
하지만 공수처를 향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내란이 발생하고 한 달 만인 지난 1월3일, 윤씨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한 겁니다. 대통령실 경호처가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하며 5시간 넘게 대치 상황이 이어진 탓도 있었지만, 애초 공수처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틀 전인 1월1일 오동운 공수처장이 "윤씨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은 하되 예의는 지킬 것"이라고 말한 걸로 드러나면서 '공수처가 내란 수괴도 예우하면서 봐주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쏟아졌습니다.
공수처는 경호처를 상대할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윤씨 체포가 어렵다고 판단, 경찰에 윤씨의 체포영장 집행을 일임한다는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된 마당에 공수처가 경찰 수사를 지휘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또 곤욕을 치렀습니다. '법을 모른다'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습니다. 공수처는 1월15일 2차 체포영장을 집행하고서야 윤씨를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내란 사태 43일 만입니다.
지난 1월24일 오전 경기 과천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전경. (사진=뉴시스)
공수처는 겨우 윤씨를 체포했지만, 그의 입을 여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윤씨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했고, 서울구치소에서 공수처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것까지 거부한 겁니다. 결국 공수는 윤씨를 체포한 당일 곧장 정부과천청사로 데리고 와 조사를 한 걸 제외하면 내란 수괴 혐의를 입증하는 데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습니다.
1월20일 검찰은 공수처에 윤씨 사건을 송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수사권은 공수처에 있지만, 기소권은 검찰이 쥐었기 때문입니다. 공수처와 검찰은 각각 10일씩 나눠 윤씨를 조사하기로 했지만, 공수처는 1월23일 사건을 검찰로 넘겼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또 불거졌습니다. 공수처는 윤씨를 체포한 후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검찰은 윤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연장해 수사를 계속하고자 했는데, 법원이 이를 거부한 겁니다. 공수처가 수사해 공소제기를 요구한 사건에 관해 검찰청 검사가 추가로 수사를 이어갈 이유가 없다고 본 탓입니다. 검찰은 1월26일 윤씨를 재판에 넘겨야 했습니다.
공수처가 출범할 때 수사 범위보다 적은 기소권이 부여됐고, 수사권만 있는 사건의 경우 검찰과 공수처의 역할, 수사 절차가 명확히 정립되지 않아 문제가 터진 겁니다. 특히 공수처는 대통령, 국회의원, 정무직 공무원 등 여러 공직자를 수사할 순 있지만 법률상 기소 대상은 판·검사, 고위 경찰로 제한됐습니다. 또 공수처에 얼마의 구속수사 기간이 주어지는지, 공수처가 수사해 공소제기 요구서와 함께 검찰에 송부한 사건을 검찰이 보완수사 할 수 있는지 등도 불명확합니다. 공수처에 대한 불완전한 입법은 내란 수괴 윤씨를 풀어주는 빌미가 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3월7일 공수처의 수사권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 파기 사유가 될 수 있다며 윤씨의 구속을 취소했습니다. 법률에 보장된 즉시항고 권리를 포기한 건 검찰이었지만, 구속 취소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공수처로 쏟아졌습니다.
'수사력 논란' 공수처…2020년 출범 때부터 예견된 일
공수처에 대한 논란은 조직이 출범하기 전부터 제기됐습니다. 2017년 9월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안이 입법에 이르는 과정에서 공수처 규모와 권한은 모두 축소된 겁니다. 애초 권고안은 공수처 검사를 최대 50명까지 두고, 임기는 6년으로 해 연임할 수 있도록 했지만, 검사 정원은 25명에 임기는 3년(3번에 한해 연임 가능)으로 줄었습니다. 문재인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은 검찰개혁을 위해 '일단 공수처부터 만들자'며 서둘렀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외치고 어깃장을 놨습니다. 결국 타협의 산물로 지금의 공수처가 생긴 겁니다.
이윤제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공수처가 만들어질 때 법무부는 법무검찰개혁위 권고안에서 정원 규모와 신분 안정성의 척도가 되는 임기를 손댔고, 국회는 공수처가 가진 기소권을 줄이는 방식으로 공수처를 또 망가뜨렸다"며 "내란 사태에서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 불일치로 인한 법 공백이 발생한 이유"라고 했습니다.
문재인정부에서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이광철 변호사는 "공수처 수사력 논란은 뼈아픈 일"이라며 "공수처 검사는 3년마다 연임할 수 있어 신분이 불안정하다. 공수처 수사 역량이 미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3년짜리 계약직에 가까운, 불안정한 신분 탓에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원이 들어오기 힘든 구조란 겁니다. 실제로 2020년 7월 공수처가 출범 후 2024년 5월까지 조직을 떠난 인력은 30명에 달합니다.
윤석열씨에 대한 고위공직자수사처 등 공조수사본부의 체포영장 집행 2차 시도가 진행 중인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이용객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만 이번 내란 사태는 공수처의 구조적 한계와 함께 가능성을 함께 보여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공수처 수사력 부족을 폐지론을 연결하기보다, 제도를 개선하는 쪽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수처라는 기관이 있었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지 못했고, 상호 견제가 이뤄졌다고 본다"며 "검찰은 내란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영장 청구에 소극적이었다고 보는데, 공수처가 적극적으로 영장청구를 하면서 (윤석열씨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이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란 수사 과정에서 형사 사법 시스템에 법·제도적 허점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가지고 공수처를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며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번 사태로 공수처에 실망한 것은 사실이나, 고위공직자 반부패 수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준 뒤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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