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예시와 비전 구분해야…이른바 '호텔경제론'에 대해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2025-05-21 15:10:32 2025-05-21 15:42:1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1일 인천 남동구 구월로데오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통령 선거가 두 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 간의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다. 격렬한 비판과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국민에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후보자들의 정책과 철학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 국민들이 이를 평가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보 간의 공방이 단순한 말꼬리 잡기나 상대 주장의 의도를 왜곡하는 수준으로 흐른다면, 오히려 국민의 합리적 판단을 방해할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이른바 '호텔경제론'을 살펴보자. 한 유력 대선 후보는 지역 유세에서 이런 예시를 들었다. "한 여행객이 호텔에 예약금 10만원을 낸다.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새로 산 침대의 외상 대금을 갚는다. 침대를 판매한 가구점 주인은 받은 10만원으로 치킨을 사 먹고, 치킨집 주인은 그 돈으로 문구점에서 10만원어치 문구류를 구입한다. 마침 호텔에 10만원을 빌렸던 문구점은 호텔에 빚을 갚는다. 그런데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고, 호텔은 문구점에서 받은 10만원을 돌려준다." 이 후보는 이를 두고 "실제로 돈이 새로 생기지는 않았지만 돈이 돌았다. 이것이 경제"라고 설명했다. 
 
경쟁 정당과 후보들은 즉각 비판했다. "노쇼 주도 성장"이라는 비판과 함께, "한계소비성향이 1이 되는 무한 동력 같은 경제는 없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심지어는 "이런 천박한 이야기를 경제철학으로 제시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유사한 예시를 여러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간한 <한국은행과 지급결제제도>라는 책자에는 "5만원으로 어느 마을 구하는 법"이라는 사례가 나온다. 이 사례도 앞서 언급한 호텔 예시와 매우 흡사하다. "한 여행객이 모텔에 들어가 5만원 지폐를 모텔 주인에게 맡기고 방을 살펴보는 사이, 모텔 주인은 옆집 정육점 주인에게 외상 빚 5만원을 갚는다. 정육점 주인은 길 건너 양돈업자에게 5만원을 주고...(중략)... 결국 여행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돈을 돌려받고 떠났지만, 마을 사람들의 채무는 모두 해결됐다." 한국은행이 '지급결제'의 개념을 설명하려고 든 단순한 예시일 뿐이지만, "왜 모든 사람의 부채가 정확히 5만원인가?"라는 식의 비판을 받지 않는다. 예시는 예시일 뿐이며, 단순해야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마도 호텔 예시를 언급한 후보는 "정부 정책의 핵심은 결국 돈이 돌도록 하는 것이며, 돈이 돌면 경제가 같은 조건에서도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만의 '아이돌봄 쿠폰' 사례와 비교해보자. 젊은 부부들로 구성된 아이돌봄 조합이 있는데 여기서는 서로의 아이를 한 시간 돌봐주면 쿠폰 한 장을 준다. 만약 사람들이 불안감 때문에 쿠폰을 아끼고 외출을 꺼리면 오히려 경제가 위축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쿠폰을 더 발행하면 부부들이 다시 활발히 쿠폰을 사용하고, 전체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호텔 예시와 구체적인 스토리는 다르지만, "경제에서 돈이 활발히 돌아야 한다"는 핵심 취지는 매우 비슷하다. 
 
호텔 예시에서도 '노쇼' 상황을 없애고 한계소비성향도 현실적으로 바꿀 수 있다. "한 여행객이 정부로부터 받은 10만원짜리 숙박 쿠폰으로 호텔에 투숙하고, 호텔 주인은 이 중 8만원을 가구 외상값으로 지급한다. 가구점 주인은 받은 돈 중 6만원으로 치킨을 사 먹고, 치킨집 주인은 다시 4만5천원을 문구점에서 소비한다..." 이렇게 바꾸면 전형적인 '재정승수효과'의 사례가 된다. 보다 현실적이고 정교하게 다듬었지만, 여전히 흠잡을 구석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예시의 세부 사항이 아니다. 예시의 현실성을 꼬집는다고 해서 그 안에 담긴 경제정책의 철학과 비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이미 후보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공약집을 내놓고 있다. 후보자 간의 비판⋅토론은 격렬해도 좋지만, 서로의 철학과 정책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릴랜드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국은행에서 조사부·기획부·조사국 근무를 하고,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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