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정유업계의 수익 바로미터인 정제마진이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정유업계의 전망은 여전히 어두운 상황입니다. 원유 가격 하락에 ‘역래깅’(비싸게 산 재료로 만든 제품을 싼값에 판매하는 상황)이 우려되는 데다 석유제품 수요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미 텍사스주 골드스미스 외곽에서 원유시추기가 작동 중인 모습. (사진=뉴시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정제마진은 최근 상승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지난주 복합 정제마진은 전주 대비 0.2달러 오른 10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연중 최고치로, 업계 관계자는 “원유 가격 하락으로 석유제품과 단가 차이가 발생하면서 정제마진이 상승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유 가격이 하락한 이유는 미중 무역분쟁과 더불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원유 증산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지난 20일 기준 배럴(bbl)당 62.56달러, 두바이유는 64.99달러로 올해 1월 대비 각각 12.54달러, 15.42달러 하락했습니다.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운송비 등 비용을 뺀 금액인 정제마진은 통상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봅니다. 하지만 손익분기점의 2배 가까이 정제마진이 올랐음에도 업계의 기대감은 낮은 상황입니다.
이는 글로벌 경기 둔화 지속, 무역 장벽 강화로 석유제품 수요가 더딜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글로벌 원유 수요 증가량 전망치를 기존 1일 103만배럴에서 73만배럴로 축소한 바 있습니다. 내년 전망치도 69만배럴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스팟마진’의 지표가 오른 건 분명 좋은 소식이지만, 원유 운송 시차를 반영한 ‘래깅마진’은 떨어지고 있어 업체들의 실적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원유를 사들이고 정제해 석유제품을 판매하기까지는 약 1~2달의 시차가 발생합니다. 정유업계는 유가 하락으로 이전에 비싸게 산 원유를 싼값의 석유제품으로 판매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여기에 원유 재고분의 가치 하락으로 회계상 손실도 입을 수 있습니다.
국내 주요 정유사들은 올해 1분기 실적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에쓰오일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이 215억원. SK이노베이션은 같은 기간 영업손실 446억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습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3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9.8% 줄었습니다. GS칼텍스는 영업이익이 116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2.1% 감소했습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보통 유가가 떨어지면 수요는 올라야 하는데 불확실성이 심해 수요마저 낮아진 상황”이라며 “유가 외에도 관세 정책 등 대내외 변수가 많아 올해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 예단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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