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치킨의 눈물
2025-06-12 13:32:27 2025-06-12 14:36:06
고향 친구 S는 아내와 치킨집을 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던 유명 프랜차이즈였다. 제수씨가 닭을 튀기고 그가 배달했다. 치킨집은 사장 인건비가 마진이라 아르바이트를 쓸 엄두도 못 냈다. 
 
친구들 모임을 그 가게에서 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주문을 처리하느라 자리에 앉지 못했다. 배달 수수료가 아까워 가까운 곳은 직접 날랐다. 한여름에도 모자 위에 ‘하이바’를 쓰고 다녔다.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쓸며 “장사만 잘되면 그만이지”라고 웃었다. 
 
재작년 초 가게에 갔을 때, 폐업을 고민한다고 했다. 그동안 장사가 곧잘 되는 줄 알았는데 빛 좋은 개살구였다. “치킨 한 마리 팔면 다 떼고 500~1000원 남거든. 그마저도 많이 팔리면 좋지. 근데 매출 늘면 프로모션 등으로 본사에서 밀어내는 물량도 늘어. 포장 용기부터 치킨무, 물티슈, 기름도 다 본사에서 사야 되고, 사입하다 걸리면 폐점이거든. 주기적으로 인테리어 공사비하고 유니폼비 조로 본사가 떼 가는 돈도 적지 않아. 너무하다 싶은 건, 한 지점에서 매출이 오르면 본사가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가맹점을 오픈시켜 경쟁하게 만든다는 거야. 본사 입장에서 가맹비, 인테리어비 등 남는 장사니까 가맹점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거지.” 
 
널리 알려진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였지만, 직접 들으니 더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져도 장사만 잘되면 그럭저럭 버티겠는데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어서 임대료조차 내기 버겁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고발하는 기획기사를 고민하던 내게 그가 웃으며 말했다. “기사 나가도 달라지는 건 없어. 정부가 손 놓고 있는데 뭐.” 지난해,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10년 가까이 해온 밥벌이를 접고 지금은 ‘노가다’를 다닌다. 
 
그는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였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 여러 차례 집권했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억강부약은 공약일 뿐이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부조리를 바로잡을 호민관은 멀리 있거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찍을 순 없잖아.” 나는 민주당을 그토록 지지하는 그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민주당이 그 맘을 갚아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난 2017년 2월,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였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광주 동구 한 치킨집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틀 만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인력 충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공정위를 핵심 기관으로 삼아 취임사에서 강조한 ‘공정경제’ 실현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공정국’을 설립하며, 공정거래 이슈를 주요 도정 과제로 삼았다. 가맹·하도급 등 전통적인 갑을 거래에 대해서도 실태조사를 벌여 위법 사례를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지시가 반가운 이유다. 
 
희대의 윤석열정권에서 가장 고통받은 이들은 그와 같은 자영업자들이다. 이 정부는 ‘치킨의 눈물’을 닦아주고 ‘커피의 한숨’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공정위의 제 역할을 통해 이제라도 그 일이 비롯되길 바라고 있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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