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사이에 두고 다투는 검은머리물때새 유조 두 마리. 한반도 서남해안에서 번식한 이들은 가을이면 충남 서천과 전남 목포, 신안 일대 갯벌에서 겨울을 난다.
검은 머리, 흰 배, 그리고 주홍빛으로 길게 뻗은 부리를 가진 검은머리물떼새(Eurasian Oystercatcher, Haematopus ostralegus)는 당근을 입에 물고 있는 듯합니다. 눈길을 끄는 이 당근 모양 부리는 갯벌에서 먹이를 찾는 검은머리물떼새가 살아가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영어로는 ‘굴잡이(Oystercatcher)’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새가 길이 약 6~7cm 부리로 조개나 굴의 단단한 껍데기 틈을 비집어 여는 데 능숙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는 검은머리물떼새를 봄부터 만날 수 있습니다. 4~6월이면 서해의 섬 주변 풀숲이나 자갈밭에 둥지를 틀기 시작합니다. 알은 2~3개를 낳고, 암수 한 쌍은 알이 부화하면 어린 새를 함께 보살핍니다. 검은머리물떼새의 한반도 내 번식은 1917년 4월, 일본 조류학자 구로다(?田長禮)가 전남 목포의 영산강 하구에서 알을 채집하면서 처음 기록했습니다. 이후 강화도 인근 무인도를 비롯한 서해안 여러 섬에서도 이들의 번식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넓고 평평한 한반도 서해안의 갯벌은 검은머리물떼새에게 이상적인 쉼터이자 먹이터입니다. 한반도 곳곳의 섬과 갯벌에 흩어져 번식했던 개체들과, 러시아 캄차카 반도와 오호츠크해 연안에서 날아온 개체들이 가을이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많은 새들이 몰려드는 곳이 있습니다. 충청남도 장항과 전라북도 군산 사이 금강 하구에 있는 작은 섬, 유부도입니다.
유부도는 서천 연안의 섬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자 정기 여객선이 다니지 않는 외딴 곳입니다. 1999년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조류의 월동 실태조사』에서는 유부도와 장항 앞 갯벌에서 약 2200마리의 검은머리물떼새가 관찰되었고, 2022년『천연기념물(동물) 전국 서식지 일제조사』에서는 무려 6072마리가 확인되었습니다. 동아시아 전체 개체수가 약 1만 마리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유부도는 전 세계 검은머리물떼새의 절반 이상이 머무르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서식지입니다.
물이 빠진 갯벌 위에 모여 휴식 중인 검은머리물떼새 무리. 검은머리물떼새는 주로 썰물 때 갯벌에서 먹이를 찾고, 물이 차오르면 휴식을 취한다.
“삐빅 삣삣삣—” 갯벌을 오가며 울음소리를 내는 검은머리물떼새는 바지락을 캐는 섬마을 사람들에게 친숙해, 오랜 이웃의 안부처럼 자연스레 회자되기도 합니다. 인천 영흥도에 사는 한 할머니에게 들은 검은머리물떼새 이야기를 김연수 작가는 『사라져가는 한국의 새를 찾아서』에서 소개합니다. 생계를 위해 바닷가로 고기잡이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부인은 백일기도를 올리다가 남편이 있을 거라 믿은 바다로 몸을 던졌고, 표류 끝에 돌아온 남편은 부인의 비보에 다시 바다로 향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진 두 부부가 다시 만나 환생한 존재가 검은머리물떼새라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바닷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검은머리물떼새의 울음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슬프고도 간절하게 들릴 때가 있고, 이러한 전설을 알고 나면 더욱 애틋하답니다.
갯벌 위에 내려앉아 있던 검은머리물떼새 수천 마리는 일제히 고개를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갯벌에 물이 차면 단숨에 날아오릅니다. 검은머리물떼새가 응시하던 먼 곳을 따라가다 보면 영흥도 할머니가 들려주신 어느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할머니의 이야기에서 그들은 검은머리물떼새로 재회해 다시 행복하게 살았다지만, 현실 속 검은머리물떼새는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연안 개발로 그들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넉넉했던 갯벌은 줄어들고, 그와 함께 검은머리물떼새가 쉴 수 있는 장소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파도와 바람이 스치는 갯벌 어딘가에서, 오늘도 조개껍데기에 부리를 내리찍고 있을 그들의 생존을 향한 치열한 의지와 생명력에 감사합니다. 주홍색 부리로 갯벌을 콕콕! 콕콕! 말이죠. 당근을 물고 날아다니는 새를 보신 적 있나요? 전설에서든 현실에서든,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검은머리물떼새를 응원하며, 콕콕!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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