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특별한 생일 초대
2025-07-02 06:00:00 2025-07-02 06:00:00
초코 케이크에 '28' 숫자 초가 꽂혔다. 식당에 모인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주인공은 없었다. 케이크 앞에 서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중년 여성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가는 점차 촉촉해졌다. 3년째 열린 주인 없는 생일 파티.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로 하늘의 별이 된 고 이상은씨의 이야기다. 
 
상은씨의 부모 이성환씨와 강선이씨는 지난 2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식당 '청년밥상문간'에서 딸의 생일 파티를 열었다. 딸 생일인 6월29일을 즈음해 또래 청년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대접을 하고 싶어 시작한 게 어느덧 세 번째가 됐다. 
 
이씨 부부와의 인터뷰가 인연이 된 특별한 생일 초대. 식당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이씨 부부는 기자를 보자 "잘 오셨다"며 반갑게 맞아줬다. 꽃다발, 케이크 등을 들고 식당을 방문한 사람들은 서로 밝은 얼굴로 인사하기 바빴다. 생일 당사자가 사진 속에만 남아 있다는 점을 빼고는 여느 생일 파티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생일 파티가 열린 청년밥상문간은 한 끼 식사비 지출이 어려운 청년들을 위한 식사 공간이다. 이곳의 유일 메뉴인 김치찌개에 라면사리까지 추가해 계산을 하려던 찰나, 자신을 상은씨의 외삼촌이라 소개한 이가 "오늘 식사는 무료입니다. 상은이 생일을 축하하러 와주셔서 감사해요. 맛있게 드세요"라고 안내했다. 
 
찌개가 끓기를 기다리며 주변 테이블들을 살펴봤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일행,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며 밥을 먹는 혼밥족 등 상은씨 또래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상은씨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가족과의 인연으로 방문했다는 중년 남성, 우연히 행사 소식을 접하고 찾아왔다는 여성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상은씨의 생일 파티가 지난 2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인근 식당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상은씨의 사진 아래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뉴스토마토)
 
송기춘 10·29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위원장과 박진 특조위 사무처장 일행도 점심 식사차 식당을 찾았다. 이들이 앉은 자리 옆으로는 이씨 부부가 지난 5월 교황청을 방문해 레오14세 교황과 만났던 당시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날의 생일 파티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활짝 웃는 상은씨의 사진 아래로 남겨진 방명록에도 '안타까운 희생을 기억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힘쓰겠다'는 다짐이 빼곡히 남았다. 상은씨와 같은 나이의 딸이 있다고 밝힌 특조위 소속 한 인사는 "엄마와 아빠의 마음으로 성실하게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식당을 떠날 무렵 "찾아줘서 고맙다"고 기자의 두 손을 꼭 잡은 선이씨는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고 함께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딸의 생일 파티를 연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는 (이태원 참사)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이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전 정부에서는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새로 출범한 이재명정부에서는 귀담아 듣고 보다 나은 세상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길 바라본다. 
  
김진양 영상뉴스부장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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