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KT 이사회로부터 차기 대표로 거듭 낙점을 받고도 자진 사퇴한 구현모와 33인 사내·외 후보 중 적격자로 뽑혔음에도 자진 사퇴한 윤경림. 두 사람 모두 윤석열정부 외풍에 굴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이사회 찬성과 경선제 진행 등으로 공정성 시비를 넘어섰지만, 결국 KT 대표 자리는 김영섭에게 돌아갔습니다.
구현모 KT 전 대표는 현직에 있던 시기인 2022년 11월8일 연임 도전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강충구 의장이 이끈 KT 이사회는 당시 정관에 따라 연임 우선 심사에 돌입했습니다. 심사 대상자를 제외한 사내이사 1인과 사외이사 8인으로 구성된 후보 심사위원회는 경영목표 달성 정도, 대내외 이해관계자 만족도, 리더십 등을 평가해 적격 판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구현모에 대한 시장 평가도 긍정적이었습니다. 연임 선언 직전인 2022년 3분기까지 KT는 연결·별도 기준 누적 영업이익 1조원 돌파를 기록했습니다. 10년 만의 성과입니다. 2022년 KT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25조원을 돌파하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실적은 당시 주가를 끌어올렸습니다. 연임 선언일 기준 KT 주가는 3만6500원이었는데요. 구현모의 대표 취임일인 2020년 3월30일(1만9700원)과 비교하면 거의 2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내부에서도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직에 오른 성공 신화로 평가돼 왔습니다. 1987년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후 경영전략담당, 비서실장, 경영지원총괄,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 등을 역임한 정통 KT맨입니다.
그러나 이사회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로부터 연임 적격 평가를 받았음에도 결국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의 노골적 반대를 넘지 못했습니다.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프레임이 씌워지며 셀프 연임 논란까지 일었습니다. 복수 후보 경선에서도 합격점이 나왔지만, 국민연금은 "불공정한 선임 절차인 만큼 의결권 행사를 검토한다"며 어깃장을 놨고, 윤석열씨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투명한 지배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업계 관계자들은 "결국 국민연금은 관의 목소리로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국회에선 여론몰이에 나섰습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이었던 김영식 전 국민의힘 의원은 소유분산기업 지배구조 관련 세미나를 열어 당시 정부 목소리에 힘을 보탰습니다.
KT는 모든 과정을 원점으로 되돌려 세 번째 경선에 돌입했습니다. 2023년 2월 공개경쟁 방식으로 대표이사 선임 재추진에 나선 결과 구현모를 포함 34명이 지원했지만, 외압 속에 결국 구현모는 사퇴했습니다.
KT이사회는 33명을 심사한 결과 당시 윤경림 KT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 사장을 포함해 KT 전·현직 임원 4인으로 구성된 숏리스트를 발표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윤경림이 차기 대표 후보자로 선정됐는데요. 이에 대해 국회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숏리스트가 KT 전·현직 임원으로만 돼 있다고 지적하며 카르텔 논란을 키웠습니다.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은 구현모와 윤경림을 일감 몰아주기와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KT 차기 대표 인선이 검찰 수사로 확전될 양상이 보이자 윤경림 후보자도 자진 사퇴를 결정했습니다. 대표로 선임될 최종 문턱인 주주총회를 단 일주일 남기고 벌어진 일입니다.
KT 이사회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사내이사였던 후보자들이 자진 사퇴했고, 사외이사들도 주주총회 직전 사퇴하며 KT 이사회엔 김용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1인만 남게 됐습니다.
초유의 대표 공석 상태에서 KT는 직무대행 체제를 꾸렸습니다. 가장 먼저 대표이사·사외이사 선임 절차, 이사회 역할 등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개선을 추진할 뉴 거버넌스 구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습니다. 신규 사외이사 7인을 선정하고 대표이사 선임 관련 규정도 손봤습니다. TF부터 신규 사외 이사진까지 용산 의중에 맞게 꾸려진 까닭에 이후 차기 대표 선임 과정은 잡음 없이 진행됐습니다.
새로 꾸려진 KT이사회는 같은 해 7월4일부터 12일까지 대표이사 공개모집을 진행했고, 사내·외 후보자 40여명이 몰렸습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3주간 서류 심사와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고, 숏리스트는 김영섭 전 LG CNS 사장, 박윤영 전 KT 사장, 차상균 서울대 교수 등 3인으로 추려졌는데요. KT 이사회는 김영섭 전 LG CNS 사장을 차기 대표 후보로 최종 낙점했습니다. 이후 김영섭 대표는 2023년 8월3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대표로 선임됐습니다.
이후 KT는 대표 공백 6개월을 뒤로 하고 체제 정비에 나섰지만, 내부에서는 낙하산 인사 논란이 지속됐습니다. 취임 3개월 만에 2년간 적체된 인사가 단행됐는데, 당시 새로 영입된 임현규 경영지원부문장이 대표적 논란 인물로 거론됩니다. 김영섭 대표는 정기인사 후 마련된 고위 임원진 자리에서 "어렵게 모셔온 분"이라며 극찬했다는 것이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KT 사정을 잘 아는 고위 관계자는 "김영섭 대표 자체가 용산의 추천을 받은 인물인 까닭에 낙하산 인사를 거부하기 쉽지 않은 구조였다"고 꼬집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간 거듭된 낙하산 인사가 KT의 근간을 흔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여전한 상황입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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