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중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나라는 없다. 본디 검찰 전통이 미약한 아일랜드, 이스라엘, 캐나다, 호주는 경찰에 기소권이 있다. 나머지 34개국에서는 검찰이 수사를 할 수 있고, 그중 다수 국가의 검찰에는 수사지휘권도 있다. 엔론 회계 부정, 아우디-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사르코지 정치 자금 등은 모두 검찰이 수사했다. OECD 부패 방지 기구 뇌물방지작업반(WGB)이 한국의 검찰 수사권 대폭 축소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2024년 11월 실사단까지 파견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수사와 기소-공소 유지는 유기적이다. 축구 골키퍼가 수비수에게 소리를 지르며 점검하듯 공소 유지 주체는 수사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은 공격수와 수비수를 갈라 중앙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수사지휘권은 기소 결정과 공소 유지의 밑바탕이 되고, 직접 수사 가능성은 수사지휘권의 뒤를 받친다. 기소 및 공소 유지 주체와 수사 주체를 완벽히 분리하면 피해자와 국가에 불리하고 피고인이나 범죄자에게 유리하다. 수사 주체는 과소 또는 과잉 수사로, 기소 주체는 억지 기소 혹은 불기소로, 공소 유지 주체는 무죄로 빨려 들 공산이 커지는 것이다. 특히 권력이나 자본의 부패 범죄나, 피해자의 인권을 고도로 보호해야 할 사건에서 더 그렇다. 한국의 역대 특검에서도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적은 없다.
선진국형 검찰이 과거 한국 검찰과 달리 직접 수사 비중을 크게 잡아먹지 않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이 차이는 검찰의 수사권에서 나오지 않았다. 인력이 만든 차이다. 검찰 인력이 적으면 자연히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직접 수사보다 수사 지휘를 하고, 직접 수사는 수사 주체와 공소 유지 주체가 겹치거나 이어지는 게 나은 중대 부패 사건을 선별해서 하게 된다. 수사 주체와 기소 주체의 분리와 융합이 부드럽게 작동되는 것이다. 사실 한국도 이미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수사의 99%를 경찰이 하고 있다. 그 후 경찰은 등골이 휘고 검찰은 손이 부끄럽다. 검찰 인력을 대폭 해고하거나 사법경찰을 갑자기 확충할 수 없으므로, 검찰 인력을 나눠 수사청을 만드는 방안은 합당하다.
다만 검찰에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은 부여해야 한다. 검찰 직접 수사의 수는 줄이면서도 유사시를 대비해 수사권은 갖고 있는, 이것이야말로 선진국형 검찰이다. 남은 검찰의 명칭도 '공소청'이 아니라 그냥 '검찰청'이면 된다. 검사는 검찰청에 다 남고 수사청은 대거 수사관 출신으로 채워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마냥 검찰에 수사권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검찰이 수사 개시한 사건의 기소 여부는 별도 기관이 결정하게 하거나, 검찰의 수사 개시는 봉쇄하고 수사지휘권과 함께 보완 수사권 정도를 부여할 수도 있다.
검찰의 비대 권력이 문제라면서 수사권 박탈에만 골몰한 결과는 어떤가. 정작 검찰의 기소 독점과 기소편의주의는 방치되었다. 같은 입시 범죄자인데도 정유라 씨는 기소유예의 특혜를 받고, 조민 씨는 수사 이후 4년이 지나 늑장 기소되었고, 어떤 학생은 곧바로 공범인 가족과 함께 기소되었다. 객관적 혐의가 있으면 기소하는 기소법정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기소유예 제도를 남겨둔다면 배심원의 심의를 받도록 할 수도 있다. 민주당 정부는 이런 개혁을 한 적이 없고, 공교롭게도 김혜경 씨, 문다혜 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정말 특권을 타파하고 진짜 검찰 개혁을 하려거든 당장 기소권부터 개혁해라.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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