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김선달이 울고 갈 전세대출의 이면
2025-10-31 06:00:00 2025-10-31 06:00:00
임대인 A는 S보증보험사로부터 세입자 B가 K은행의 전세대출을 연체해 보증을 선 S가 대신 갚았으니, 전세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B가 아닌 S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B는 보증금이 부족해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았다. 은행은 B로 하여금 담보로 보증금 반환채권을 양도하게 했고, 그것만으로는 미덥지 않아 B의 신용 보강이라는 명목으로 S의 보증서를 발급받아 오게 했다. 이제 B는 대출금 전체에 대한 연체이자를 물어야 한다. 전세대출로 낡은 빌라가 아닌 아파트에서 잠시나마 살 수 있었지만 연체이자 때문에 빌라로 돌아갈 보증금도 조만간 없어질 것이다. 
 
2024년 말 기준 전세대출 잔액이 165조원이라고 한다. 세입자 B는 익명의 소수가 아니다. 전세대출 보증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HF), SGI서울보증 등이 취급한다. 은행들은 지난 5년간 전세대출 이자로만 23.7조원, 연평균 4.7조원을 벌었고, HUG 등 보증기관의 전세보증 사고 규모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24년 4조4896억원에 달한다고 알려진다. 전세보증 사고가 전부 은행의 전세대출로 인한 것은 아니겠지만, HUG는 2024년에 2조5198억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며 2025년 역시 3조원대 중후반의 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른 기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HUG와 HF는 공기업이고, SGI 역시 예금보험공사가 9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실상의 공공기관이다. 이들 보증기관의 적자는 결국 국민세금으로 메워질 것이다. 반면 올해도 은행들은 역대급 실적을 냈고 KB금융과 신한지주는 5조원대, 다른 은행들도 수조 원대의 순이익이 예상된다고 한다. 
 
전세대출에 관한 한 은행은 돈을 떼일 염려가 없다. 세입자가 이자를 연체하거나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대출 사고가 나도,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준다.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채권을 담보로 잡았지만 대출 심사는 세입자의 소득, 신용 등을 위주로 이루어진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를 막는 필터의 역할은 할 필요가 없다. 담보에는 관심이 없다. 이자를 잘 낼 수 있는지만 중요하다. 무위험의 이자수익을 누릴 수 있으니, 땅 짚고 헤엄치기다. 보증은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 
 
보증료는 은행이 아니라 세입자가 낸다. 대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증이익을 보는 것은 은행뿐이다. 깡통전세로 세입자는 전세금을 날리고, 보증기관에 채무도 지게 되어 결국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세입자는 자신의 위험이 아니라, 은행의 위험을 헷지해주기 위해 보증료를 낸다. 위험은 세입자와 공공이 지고, 수익은 은행이 독점한다. 
 
정책당국은 갭투자 등 투기 수요을 억제해 집값을 잡기 위해 2025년 6월부터 HUG 등 보증기관의 보증 비율을 100%에서 90%로, 80%로 축소했다. 대출금 중 일부나마 은행이 직접 위험을 부담하게 되어 무분별한 대출을 억제하고 보증기관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 그 이상 실수요자들이 시장에서 구축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전세대출의 제도적 성격을 보증기관의 보증서가 아니라, 보증금 반환채권을 담보로 하는 담보대출로 재정의하고, 대출심사를 세입자의 신용이 아니라, 보증금 반환채권에 대한 실질 심사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공공이 전세대출의 사실상 최종 공급자 역할을 할 것이라면, 차라리 은행에 대한 보증을 없애고 통합적인 전세대출 전문 공공기관을 설립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가 전세를 위한 대출은 보증 없이 은행 자율에 맡긴다. 대동강 물을 꼭 생수병에 넣어서 팔아야 한다면, 김선달이 아니라 그냥 평양감사가 팔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천경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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