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흔들리지 않는 힘
2025-07-28 06:00:00 2025-07-28 06:00:00
얼마 전 선배 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마음에 깊이 남은 말은 ‘흔들리지 않는 힘’이었다. 그는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은 순간부터, 수많은 유혹과 조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정공법을 택했다. 대체의학, 신비치료, 유명 한의사, 각종 항암식품과 자연치유 요법들이 ‘염려’와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밀려들었지만 형과 형수는 그 어떤 미혹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대게는 거기에 휘둘리다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형과 형수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국립암센터에 진료 요청을 하니 두 달 기다려야 첫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주에서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은 상태라 진료 기다리다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길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기다리기로 했고 두 달 뒤 첫 진료를 받았다. 마침 예전 일산 살 때 사두었던 아파트가 있어 거기 기거하며 치료받기로 했다. 
 
치료는 암 부위 절개, 방사선 치료 두 갈래였다. 무엇을 먼저 받느냐의 선택만 가능했다. 방사선 치료를 먼저 받기로 했다. 몇 시간 동안 방사선을 맞으며 암세포 뿐만 아니라 몸에 이로운 정상세포까지 죽여야 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몸에 극심한 통증이 오고 오감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져 생수조차 냄새 때문에 마실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작은 온도의 변화에도 몸은 격렬하게 반응한다. 이런 극한 고통을 한계치인 29번 받아야 방사선 치료가 끝이 난다. 
 
그 다음은 암세포 절개. 수술 뒤엔 정상적인 배변이 불가능해 장루 주머니를 혹처럼 붙이고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디를 다니기도, 누구를 만나기도 어렵다. 배변을 화장실 변기에 비워내지 못하고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삶의 비루함과 괴로움은 삶의 존엄마저 위태롭게 한다.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정신적 흔들림이 매 순간순간을 뒤흔든다. 완치될 수 있을까? 유튜브 봤더니 자연치유로 나았다는 사람이 있던데.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신은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걸까? 윤 아무개는 온갖 못된 짓을 하고 살아도 저렇게 피둥피둥 번들번들 잘도 사는데. 이렇게 치료받다 돈이 거덜 나면 어쩌지? 완치도 못하고 돈만 다 써버리면 남은 가족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번민과 망상이 형을 덮쳤고 그 혼란스러운 파장은 형수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그러나 형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른 가족도 흔들리지 않았다. 형의 선택을 지지하고 희망과 확신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형이 아무리 굳센 의지를 갖고 있었다 해도 확고한 사랑의 응원과 지지가 없었다면 아마도 무릎을 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갈팡질팡할 때도 있었지만 국립암센터 담당 의사의 프로토콜에 따라 치료는 진척됐다. 그렇게 5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형은 기적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는 말 그대로였다. ‘흔들리지 않는 힘’, ‘흔들렸으나 기우뚱한 균형을 되찾은 힘’이 기적을 만들었다. 완치 후, 형은 다시 삶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의 문학관 운영을 맡게 되었다. 15년 제주살이를 접고 전북 어느 마을의 들판으로 거처를 옮겨 거기서 두 해째 싱그러운 여름을 맞고 있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