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하기 힘든 요즘이다. 폭염과 폭우로 출퇴근하기도 힘들다. 휴가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직종에 따라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폭염과 폭우 때문에 한정된 휴가를 쓰는 것도 좀 억울한 마음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살인적인 더위와 온몸을 젖게 만드는 비를 맞으며 일터로 나간다.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이러한 기후 재난에도 노동자들은 일을 꼭 해야 하는 것인가. 특히 건설과 택배, 라이더 등 야외 노동자들은 기후 재난에 안전과 생명까지도 위협받고 있는데 말이다. 올해에도 노동자들은 폭염에 일하다 쓰러지고 사망했다. 올여름 들어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자마자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20대 외국인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그의 체온은 40.2도였다. 폭염 속에서 야외 측량 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도 사망했다. 당시 야외의 체감온도는 34.3도에 달했고, 쓰러진 그의 체온은 40도 이상이었다.
최근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태풍, 폭우, 폭염, 폭설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 스스로 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대(83.1%), 프리랜서·특수고용(82.2%), 300인 이상 사업장 근무자(80.6%) 등에서 이러한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 판단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행사하는 노동자는 없다. 징계와 해고, 손해배상에 대한 현실적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법에 적시된 급박한 위험에 대한 정의도 불분명하고 작업 중지를 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자에 대한 처벌 조항도 없다. 작업 중지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보전할 방법도 마련돼 있지 않다.
정부는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경우 노동자에게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시간을 부여하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지난 7월 17일부터 시행 중이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폭염 날씨에 야외에서 2시간 일하고 20분 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안전조치다. 규칙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 건설 현장에서 휴식을 보장받는 비율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권고가 아닌 법적 규제의 효과다. 하지만 여전히 폭염 관련 휴식을 보장받고 있다고 답한 건설노동자는 여전히 절반(42.7%)에도 못 미친다. 고용노동부의 폭염 안전 ‘5대 기본수칙’은 기온 35도 이상에서는 작업을 중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80.3%)는 폭염으로 작업 중단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현장에서 쫓겨날까봐”가 28.8%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9월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를 개정해 사업주가 폭염과 한파에 따른 노동자들의 건강장해를 예방해야 할 의무를 부과했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올해 6월 1일)을 앞두고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 23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령안은 폭염과 폭염 작업 정의 신설, 실내 폭염 작업 시 조치 규정, 폭염 작업 시 온열질환 예방 조치 규정, 폭염 작업 시 휴식 시간 부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간 개정법과 개정령안이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 피해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조항이 최종 개정안에서 삭제됐고, 배달·택배·이동노동 등 특수고용 노동자가 배제됐으며, 건설 현장에 냉방기 설치는 제외되고 연속공정의 경우 의무 적용에서 제외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람 목숨을 지키는 특공대라고 생각하고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 직을 걸라”고 했다. 또한 “올해를 산업재해 사망 근절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감독과 기업의 투자, 사업주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이와 함께 삼성물산이 건설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면서 산재가 줄어든 사례에서 보듯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폭염과 같은 기후 재난의 경우 당시의 기상 상황뿐만 아니라 사업장의 작업 환경, 노동자 당사자의 신체·건강 조건에 따라 스스로 작업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 폭염에는 쉴 수 있는 권리가 노동자도 살리고 기업도 살린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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