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귀화한 외국인을 구박하는 일본 우익
2025-08-11 06:00:00 2025-08-11 06:00:00
재일동포의 생활세계와 정신적 내면을 진솔하게 묘사한 작품을 내고 있는 여성 작가 후카자와 우시오의 자전적 에세이 『はざまのわたし(사이에 낀 나)』의 한국어판이 “마지막엔 누룽지나 오차즈케로”(김현숙 옮김)라는 제목으로 공명에서 출간되었다. 재일동포 2세인 저자는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일본인도 들어가기 어려운 일류 사립 중교교를 거쳐 명문대를 나왔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연애도 취업도 잇달아 실패한 좌절을 경험했다. 이 책에 실린 먹을 것과 관련된 생애사적 일화는 재일동포가 처해 있는 상황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밥상머리에서 혼나면서 김치 먹는 법을 익혀야 했다. 저자의 어머니는 냄새를 줄이려고 마늘을 적게 넣고 사과, 배를 많이 넣은 김치를 담갔다. 그러나 한류가 퍼지고 김치가 시판되자 저자의 가족들도 마음 놓고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고향 삼천포에 가면 친척들은 저자 일행이 김치를 먹는 진짜 한국인인지 확인하려 했다. 저자는 재일동포와 결혼한 다음에야 김치를 즐기게 되었다. 
 
가부장적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저자에게 커피는 금지 식품이었다. 반면에 저자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좋아했던 코코아는 민족 차별 때문에 취업을 할 수 없었던 외삼촌들이 경영하던 카페와 연결되어 있다. 가수 지망생이었던 작은 외삼촌은 레슨을 받다가 “조선인은 안 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 정신병을 가지게 되었다. 상태가 좋으면 간신히 카페 일을 거들기도 했지만 결국 폐쇄 병동에서 사망했다. 저자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중고생 시절에 학교를 빠지고 카페에서 교복 차림으로 담배를 피거나 남학생과 데이트를 하는 방법으로 작은 반항을 시도하기도 했다. 반면에 커피에 대한 긍정적 기억은 결혼, 베트남 여행, 고향 방문, 서울의 고궁과 대학로의 카페로 연결된다. 
 
스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술, 야키니쿠(불고기), 샌드위치, 초콜릿도 저자의 생애사와 연결되어 있다. 샌드위치는 육아에 시달리는 엄마가 끼니를 챙길 수 있는 간편식으로 등장한다. 망명객 시절의 김대중 대통령을 지원했던 부친은 고향을 안전하게 방문하기 위해 정보부원에게 돈을 바쳐야 했다. 야키니쿠를 맛있게 먹었던 추억은 외교관 신분을 가진 정보부원 가족을 접대하던 고급 음식점과 연결되어 있다. 소설가로 등단한 저자는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적인 시각을 가진 자유로운 코스모폴리탄이 되어 수시로 서울의 맛집과 키페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다. 
 
저자는 사회적 압력 때문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지만 재일동포를 음해하는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에 항의하는 운동을 지지하고 있다. 이 장면은 법률적 국적과 민족적 정체성은 별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인  7월31일자 <주간 신조(週刊新潮)>에 칼럼을 게재한 타카야마 마사유키(高山正之)라는 우파 논객이 후카자와 우시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일본인의 차별 의식을 비판하는 내부 고발을 하려면 일본식 이름도 쓰지 말라”고 요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더구나 그는 후카자와가 “창씨개명 2.0”을 했다고 야유했다. 이 칼럼은 중국계 정치인과 교수에게 패전 이전에 쓰던 “지나인”이라는 멸칭을 사용하고, 남경대학살을 부인했으며, '종군 위안부'는 공창이라고 우겼다. 
 
8월4일, 후카자와는 도쿄의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본인에 대한 차별과 명예훼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력한 항의가 제기되자 <주간 신조>는 그날 저녁에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정작 타카야마 본인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 사건은 일본에서 수구파 우익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도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참정당(參政黨)이 약진하고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패배하는 불길한 조짐이 나타났다. K-Pop을 즐기는 일본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일 관계 개선은 용이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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