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주주 양도세, 징벌적 과세에서 자본시장 활성화 도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25-08-13 06:00:00 2025-08-13 06:00:00
1999년, 우리나라에 대주주 양도세가 처음 도입될 때의 명분은 분명했다. "재벌그룹 소유주가 2세, 배우자 등에게 주식을 무상 증여하는 사례가 많다"는 판단 하에, "이 같은 부의 무상 이전 행위를 적극 차단하기 위해" 상장법인 대주주가 일정 수준 이상의 주식을 양도할 때 양도세를 과세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26년이 지난 지금, 대주주 양도세는 그 초심을 잃고 단순한 '부유층 과세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2000년 100억원이었던 대주주 기준은 점차 낮아져 2013년 50억원, 2016년 25억원, 2020년에는 10억 원까지 하향 조정되었다. 윤석열정부에서 50억원으로 완화되었다가 최근 다시 10억원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은 이 제도가 더 이상 재벌의 편법 증여 방지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세수 확보의 관점에서만 접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4억원을 넘어선 현재, 주식 10억원 보유자를 '대주주'로 간주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하는 점이다. 시가총액 400조원인 삼성전자 주식 10억원은 전체 지분의 0.00024%에 불과하다. 이런 미미한 지분을 가진 투자자를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주주'로 분류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외 주요국의 주식 양도소득세 제도를 살펴보면, 한국의 '대주주' 개념이 얼마나 독특한지 알 수 있다.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투자자에게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권 국가들은 보유 주식 규모가 아니라 소득 수준에 따라 세율을 차등 적용하고 있으며, 1년 이상 장기 보유한 주식에 대한 양도 소득에는 상당한 세제 혜택을 별도로 부여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아예 주식 양도소득세가 없다. 
 
한국과 유사하게 '대주주'의 개념을 양도 소득세에 적용하고 있는 유일한 선진국은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도 원칙적으로는 모든 투자자에게 20.315%의 단일 세율을 적용하는 분리과세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의 경우에만 주식 양도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산하여 종합소득으로 과세한다. 이는 한국처럼 대주주를 징벌적으로 중과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가 가능한 수준의 지분 보유자에 대해서는 그 양도 차익을 사업소득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과세 원칙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3% 이상 지분 보유자는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사업 참여자로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선진국 양도소득세제의 공통점은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우대 정책을 펼치면서도, 특정 금액 이상 보유자를 자의적으로 '대주주'로 분류하여 차별적으로 과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모든 투자자에게 과세하되, 일반 소득세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여 자본시장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한국처럼 양도소득세와 거래세를 이중으로 부과하는 국가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아직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경영권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책정되고, 지배주주 일가의 편법적 부의 이전 시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주주 양도세 제도를 당장 폐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재처럼 10억원이라는 낮은 기준으로 일반 투자자들까지 대주주로 분류하는 것은 제도의 취지를 벗어난 과도한 규제다. 
 
필자는 최초 입법 취지를 감안하여, 양도소득세 상 '대주주'의 기준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기를 제안한다. 기업지배구조의 관점에서 대주주란 주주총회 및 이사회 등을 통해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여야 한다. 현재 상장사들의 평균 시가총액이 약 1조원 수준임을 고려할 때, 평균적인 규모의 상장사에서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가 단독으로 주주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약 100억원의 주식이 필요하다. 혼자서 주주 제안은 할 수 있어야 최소한 대주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기준이 '최종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적정한 기준을 마련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대주주 양도세 논의는 단순히 세수 확보나 조세 형평성의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현재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주식에 대한 과도한 세금 부담은 자본의 해외 유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미국 주식 투자가 활발해지는 현상은 단순히 수익률 차이 때문만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합리한 국내 세제에 대한 피로감도 작용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한국도 대주주 구분 없는 보편적 양도소득세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이고 예측 가능한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대주주 기준을 최소한 10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여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가 가능한 수준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동시에 장기 보유 우대, 손실 이월공제 확대 등 투자자 친화적인 제도를 도입하여 건전한 투자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과세 정책이 징벌적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고액 자산가들이 보유한 여유 자금이 우량 기업에 장기투자의 형태로 유입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의 지름길이다. '부자 증세'라는 포퓰리즘적 접근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자본이 생산적인 투자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신중하고 섬세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대주주 양도세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회복하고,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윤태준 액트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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