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23일부터 일본과 미국을 연쇄 방문하며 정상회담에 나섭니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비롯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 후속 조치, K-원전까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을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특히 외교적 성과에 따라 국내 여론도 달라질 수 있어서 두 정상회담이 이 대통령에겐 국정 지지율을 반등시킬 기회로 꼽히는데요. 우선 과거사와 K-원전 문제에 대해 유연함을 드러내며 전략적 행보에 나섰습니다. 이 대통령이 줄곧 강조했던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오른 분위기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위안부 합의 뒤집지 않겠다"…일본과 과거사·미래 협력 '투트랙'
21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23일 오전에 출국해 일본에서 첫 순방 일정을 시작합니다. 당일 오전 일본에 도착하는 이 대통령은 재일동포 오찬 간담회를 하고, 오후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진행하며 공식 일정을 이어갑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양국 간 과거사 문제가 부각될 전망입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이날 보도된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앞선 정부의 '위안부' 합의·강제징용 해법을 준수하겠다고 밝히며 과거사 문제와 미래 현안을 분리하는 '투 트랙'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과거 박근혜정부의 '위안부 합의'와 윤석열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안에 대해 "한국 국민이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전 정권의 합의"라면서도 "국가 간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이전 정부의 한·일 간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겁니다.
이 대통령은 또 일본에 대해 "매우 중요한 존재"라며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해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로 일본과의 대립보다는 합의 이행을 통해 대일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신호를 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도 "앞으로 한·일 관계를 실용적인 의미에서든, 국익 차원에서든 잘 개선해 나가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말씀"이라고 전했습니다.
한·일 회담 의제로 미국발 통상 압박에 대한 대응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한·미·일 안보 협력, 과거사('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등이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거세지는 미국발 통상·관세 압박을 놓고서는 공조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는데요. 정치권에선 미국과 통상·관세 문제를 완전히 매듭짓게 되면 일본과의 CPTPP 가입, FTA 체결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8차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2의 마스가로 K-원전 '부상'…필라델피아서 조선소 시찰도
일본에서 24일(현지시간) 출국한 후 25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됩니다. 회담에선 지난달 말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와 동맹 현대화 등에 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또 관세 협상 타결 때 조성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489조원) 규모의 투자 펀드를 포함해 국내 기업이 별도로 마련한 대미 투자의 규모도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회담에선 양국의 원자력 협정 개정 문제가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 1월 양국이 체결한 '한·미 원자력 수출·협력 원칙 약정(MOU)' 후속 조치로 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의 합작법인(JV) 설립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양국의 원전 협력이 관세 협상 당시 한국 정부가 미국에 제안한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뛰어넘을 '제2의 마스가'로 부상하고 있는데요. 미국 원전 시장 진출이 현실화한다면 K-원전이 한·미 경제 안보 협력의 핵심 사업으로 부각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됩니다.
한국 정부에서 원전 협력에 나서는 것 역시 역대 민주당 정부에서 과도한 원전 수출에 우려를 제기한 것과는 다른 행보입니다. 원전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해석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인데요. 특히 한국 정부의 원자력 협정 개정 요구가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등 동맹 현대화 문제를 두고 미국과의 딜을 염두에 둔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한과의 대화 여건 조성도 이번 한·미 회담에서 다뤄질 주요 의제로 꼽히는데요.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북핵의 정책적 방향은 한반도 비핵화"라며 "1단계는 핵과 미사일에 대한 동결, 2단계는 축소, 3단계는 비핵화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노무현정부 때부터 쓰였던 '완전한 비핵화'(CVID)라는 표현은 쓰이지 않았는데요. 또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경제계·학계 인사 등과의 일정을 소화한 후 26일 워싱턴 D.C.에서 필라델피아로 이동해 한화 필리조선소 시찰에 나설 예정입니다. 한화 조선소는 한·미 조선업 협력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데요. 이후 28일 서울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방일·방미 일정을 마무리할 계획입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방일·방미 일정과 관련해 "참으로 어려운 환경이기는 하지만, 국민을 믿고 국가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호혜적인 외교안보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미,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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