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택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저출생 해법은 공허하다
2025-08-29 06:00:00 2025-08-29 06:00:00
한국의 저출생 문제는 이미 국가적 위기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해외 언론이 14세기 유럽 흑사병 시기의 인구 급감보다 심각하다고 평할 정도였다. 2023년에는 0.72명으로 더 떨어졌고, 2024년에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0.75명에 불과하다. 이는 현재 부모 세대의 100명당 자녀가 대략 38명, 손자는 14명, 증손자는 5명 정도라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한국 사회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흐름이다. 
 
물론 출산율 저하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전 세계 출산율은 1970년 5명 수준에서 지금은 2명을 조금 넘는 수준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한국의 하락 속도와 수준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이 한국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많은 연구는 일자리 불안, 과도한 경쟁, 사교육 부담, 육아휴직과 경력 단절 문제, 사회적 양육 불안 등 다양한 요인을 지적한다. 누구에게나 결혼과 출산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인 만큼,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 있는 복합적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논문과 보고서들이 반복적으로 중요하게 지적하는 요인이 있다. 바로 주택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선다. 주택은 결혼과 출산의 전제 조건이며, 동시에 자산 축적과 사회적 지위까지도 결정한다. 청년들이 독립적인 삶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최소 조건은 안정된 거주지인데, 지금은 이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월세 또는 대출 상환이 소득의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결혼이나 출산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안정된 집 없이 가정을 꾸리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또한 주거 불안정은 청년층의 정신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주택 문제는 단순히 비용 부담의 차원을 넘어선다.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부동산 불패 신화가 출산 결정까지 압박한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빨리 집을 사야 자본이득을 많이 얻는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른바 ‘영끌 대출’은 젊은 세대를 빚더미에 올려놓았고, 그런 상황에서 자녀 양육은 더욱 엄두를 내기 어렵다. 한때 유행했던 ‘몸테크’도 상징적이다. 낡은 집을 매입해 불편을 감내하며 재개발, 재건축 차익을 노리는 방식인데, 그 자체가 청년들이 얼마나 절박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몸을 갈아 넣어야 집을 마련하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울 수 있겠는가. 
 
최근에는 주택 가격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몸테크조차 실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힘든 시간을 버틴 뒤 안정된 주거와 함께 출산을 고려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청년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은 주요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이는 단순히 결혼이나 출산을 늦추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포기하게 만드는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은마 10억 되면 아이 낳는다”는 기사 제목은 현재 한국의 구조적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주택 문제는 단순한 주거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 세대의 생애 전반을 옥죄는 구조적 족쇄가 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은 물론 직업 선택, 경력 개발, 심리적 안정감까지 주택 문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보육 지원, 육아휴직 개선 등 저출산 대책을 아무리 내놓더라도, 집 문제라는 근본 장벽을 넘지 못하면 청년들의 삶의 궤적은 바뀌기 어렵다.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 문제와의 연계성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저출생은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사회문제다. 하지만 그 복합적 원인 가운데 핵심축을 이루는 것이 주택 문제라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주택 문제는 청년층에게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족쇄이며, 그 결과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을 압박하고 있다. 앞으로의 정책은 출산장려금 얼마를 지급하는 단기 처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택 문제라는 구조적 족쇄를 풀지 않고서는 한국 사회의 미래도 풀리지 않는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