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조 풀어도 '0%대'…커지는 'R 공포'
한은, 성장률 0.8%→0.9% 소폭 상향
소비 회복세에도 건설 경기 부진 '발목'
두 차례 추경에도 저성장 터널에 갇혀
2025-08-28 16:55:38 2025-08-28 17:37:57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한국은행이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8%에서 0.9%로 소폭 올렸습니다. 지난 2023년 11월 이후 다섯 차례 연속 성장률 전망치를 낮춰오던 한은이 '성장률 깎기'를 멈추고 처음으로 상향 조정한 것입니다.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는 정부 눈높이와 같은 수준입니다. 성장률을 소폭이나마 끌어올린 배경에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 정책 효과로 내수 경기가 부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판단이 주효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두 차례에 걸쳐 45조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도 0%대 저성장을 막지 못하면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성장률 깎기' 멈춘 한은…추경 효과 반영 
 
한은은 28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국내 실질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지난 5월 발표한 0.8%에서 0.1%포인트 상향한 0.9%로 제시했습니다. 내년 성장률은 5월 예측과 동일하게 1.6%로 유지했습니다. 앞서 한은은 지난 2023년 11월 이후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지속적으로 낮춰왔습니다. 2023년 11월 2.3%로 전망한 이후, 지난해 5월 2.1%, 11월 1.9%, 올해 2월 1.5%, 5월 0.8% 등으로 줄곧 끌어내렸습니다. 
 
한은의 눈높이는 정부와 같습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2일 '새 정부 경제성장 전략'을 통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에서 0.9%로 절반이나 낮추면서 '0%대' 성장을 공식화했습니다. 한은 전망치는 국제통화기금(IMF),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제시한 0.8%보다는 높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지난달 말 기준 주요 해외 투자은행(IB) 8곳 평균 전망치 1.0%보다는 낮은 수준입니다. 
 
지난 5월 성장률을 대폭 낮춰 잡은 한은이 3개월 만에 전망치를 소폭 올린 것은 올해 2분기 이후 소비 회복세와 관세 불확실성 완화, 재정 지출 확대 영향 등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2차 추경과 경제 심리 개선으로 소비 회복세가 예상보다 커졌다"며 "성장률을 0.2%포인트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습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 2차 추경의 올해 성장률 개선 효과는 0.1%포인트라는 게 한은의 추산입니다. 
 
여기에 수출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이면서 성장 흐름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이 총재는 "수출 측면에서도 성장률을 0.2%포인트 높이는 요인이 있었다"며 "지난달 말 타결된 대미 협상 결과 평균 관세율이 5월에 봤던 것과 큰 차이는 없었지만,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수출은 당분간 양호한 흐름을 보이겠지만, 미국 관세 부과 영향이 확대하면서 점차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만 올렸다는 게 한은의 설명입니다. 
 
반면 건설 경기 부진은 성장률 전망에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 총재는 "건설 경기가 부진한 점이 성장률을 0.3%포인트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건설투자가 성장에 (부정적으로) 기여한 부분이 1.2%포인트"라면서 "보합만 됐어도 성장률이 2.1%는 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돈 풀고도…코로나 이후 첫 '0%대'
 
문제는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가 지난 5월보다 소폭 높아졌어도 여전히 1% 미만이라는 점입니다. 195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가 1% 미만으로 성장했던 때는 1956년(0.6%), 1980년(-1.6%), 1998년(-5.1%), 2009년(0.8%), 2020년(-0.7%) 등 다섯 번뿐입니다. 각각 6·25 전쟁, 2차 오일쇼크,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같은 대형 위기 여파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미국의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두 차례의 추경 편성도 이뤄졌습니다. 앞서 정부는 1차 추경 13조8000억원, 2차 추경 31조8000억원 등 총 45조6000억원 규모의 재정 투입을 단행했습니다. 45조원이 넘는 돈을 풀고도 0%대 저성장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정부 안팎에선 연간 0.9% 달성도 쉽지 않다는 지적도 뒤따릅니다. 연간 0.9% 성장을 기록하려면 하반기 성장률이 1%대 중반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당장 미국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가 본격화하는 올 하반기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등 하반기 경제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기재부 관계자도 '새 정부 경제성장 전략' 브리핑에서 "연간 성장률 0.9%를 달성하려면 하반기에는 거의 1%대 중반 정도 성장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재정 여력도 사실상 전부 소진해 단기 성장률을 끌어올릴 정책 수단도, 성장 동력도 마땅치 않습니다. 일각에선 3차 추경도 거론되지만, 올해 시기적으로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 나라 곳간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기재부 역시 "3차 추경은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사실 성장률이 1%대를 넘지 못하면 다 저성장인 셈이기 때문에 0.8%나, 0.9%나 크게 의미가 없다"며 "수치보다는 어떻게 성장률 전망치를 달성하느냐가 중요한데, 소비쿠폰 등 일회성 재정 지출이 일시적으로 수치를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민간 투자나 생산 확대 등 실질적 성장 기반으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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