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미토콘드리아 곁에서 단백질을 만든다
MIT, 세포의 '현장 생산 체계' 숨은 비밀 밝혀
2025-09-03 08:54:15 2025-09-03 14:24:10
현지에서 생성된 단백질이 미토콘드리아 기능에 도움이 된다. (사진=Whitehead Institute)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우리 몸의 세포는 매 순간 수많은 단백질을 생산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자리에, 제시간에, 정확히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해야 세포가 제대로 작동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현지 변형(localized translation)’입니다. 단백질이 필요한 바로 그 자리에서 생산되도록 조율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화이트헤드생물의학연구소 연구진은 현지 변형의 새로운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에너지 생산을 담당하는 세포 내 소기관 ‘미토콘드리아’ 주변에서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지는지 정밀하게 분석한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셀>(Cell)에 8월27일 게재됐습니다. 
 
MIT 조너선 와이스먼(Jonathan Weissman) 교수는 “세포가 미토콘드리아에 필요한 단백질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드는지 직접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 과정이 흔들리면 에너지 대사 이상이나 퇴행성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빛으로 밝힌 새로운 단백질 생산 지도
 
미토콘드리아 주변 단백질 생산을 ‘실시간’으로 잡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리보솜(ribosome, 단백질 합성 기계)은 몇 분 만에 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어디서 어떤 단백질을 만드는지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에는 비오틴(biotin)이라는 분자를 이용해 특정 위치의 리보솜을 표지했지만, 미토콘드리아는 비오틴 없이는 정상 작동하지 않아 적용이 어려웠습니다. 
 
연구진은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현지 변형을 새로운 도구 ‘LOCL-TL’로 정밀하게 분석했다. LOCL-TL(Local Translation Locator) 덕분에 과학자들은 처음으로 미토콘드리아 곁에서 생산되는 단백질의 종류와 생산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와이스먼 교수는 “LOCL-TL은 세포 속 단백질 생산 지도를 새롭게 그릴 수 있는 도구”라며 “그동안 보이지 않던 세포의 현장 공정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LOCL-TL의 강점은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잡아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연구진은 LOCL-TL을 통해 기존의 비오틴 기반 표지법을 대체하고, 청색광(blue light) 신호에 반응해 미토콘드리아 표면에서만 리보솜을 표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장치는 빛을 쬐는 순간에만 작동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잡음을 배제하고, ‘지금 이 순간 미토콘드리아 곁에서 합성 중인 단백질’만 정확히 기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LOCL-TL은 기존 기술과 달리 세포를 교란하지 않으면서도, 단백질 합성의 현장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 이 연구의 제1저자인 징촨 루오(Jingchuan Luo) 박사의 설명입니다. 그는 “특히 단백질이 어느 구간까지 생산됐는지까지 보여주는 세밀함이 질병 연구에 결정적 단서를 주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연구진이 청색광에 반응하는 표지 도구 LOV-BirA를 개발하여 ‘지금, 여기’에서 생산 중인 단백질만 정확히 포착하여 분석한 결과, 핵 속 유전자에서 암호화된 미토콘드리아 단백질 가운데 약 20%가 실제로는 미토콘드리아 근처에서 합성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단백질들은 크게 두 부류였습니다. 
 
하나는 긴 단백질군(400 아미노산 이상)인데, 이것은 박테리아 기원을 지닌 고대 단백질로, 세포 내 어디서든 합성이 시작되지만 곧바로 미토콘드리아로 옮겨져 나머지가 생산됩니다. 다른 하나는 짧은 단백질군(200 아미노산 이하)으로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단백질로, RNA 단계에서부터 미토콘드리아로 직접 모집돼 그 자리에서만 생산됩니다. 
 
20억년 전 세균이 숙주 세포와 공생하며 생겨난 에너지 공장 미토콘드리아. 이번 연구는 그 고대의 흔적이 여전히 단백질 생산의 우선순위에 작동하고 있고 있고, 세포 속 고대의 유산과 현대적 혁신이 공존하는 이중 체계를 확인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미토콘드리아 표면 단백질 AKAP1이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연구진은 특히 짧은 단백질이 제자리에서 만들어지지 않으면 미토콘드리아의 세포 에너지 생산(산화적 인산화)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현지 변형이 단순한 생산 전략이 아니라 세포 생존을 좌우하는 필수 장치이며, 현지 변형이 붕괴되면 에너지 공장의 불꽃이 꺼지듯 세포 기능이 붕괴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질병 연구의 새로운 길 열리나
 
이번 연구는 이전의 국제 연구 동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 2023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신경세포 말단에서의 현지 변형이 학습과 기억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밝혔고, 2024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팀은 암세포가 현지 변형을 조절해 항암제 저항성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보고한 바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산뿐 아니라 노화, 신경퇴행성 질환, 심혈관 질환 등과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MIT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발견한 것이 단순한 세포 생리학의 진보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와이스먼 교수는 “LOCL-TL 기술은 미토콘드리아를 넘어 신경 가소성, 배아 발달, 암 연구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라며 “퇴행성 뇌질환·심혈관 질환·암 같은 난치병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논문: https://www.cell.com/cell/fulltext/S0092-8674(25)00916-X
미토콘트리아의 현지 변형을 밝힌 MIT의 연구 개요. (사진=Cell)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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