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롯데손해보험이 대주주 빅튜라 유한회사에 인수된 직후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을 부풀려 지표를 왜곡시켰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빅튜라가 롯데손보 채권단과 주식담보대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내건 기한이익상실(EOD) 조건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빅튜라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면서 롯데손보 대주주입니다.
롯데손보 경영유의 제재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롯데손해보험에 대한 정기검사로 내부통제가 미비한 점을 적발하고, 지난달 13일 롯데손해보험에 대해 17건의 '경영유의' 제재 조치를 했습니다.
여러 경영유의 조치 중에서도 롯데손보가 2023년 12월 말부터 2024년 9월 말까지 킥스 비율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실제보다 높게 부풀려 산출한 점이 주목됩니다. 킥스 비율은 보험사의 대표적인 재무건전성 지표로, 보험사가 고객에게 약속한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 여력을 판단하는 데 쓰입니다.
금융감독원 롯데손해보험 경영유의 제재안 중 일부 발췌. (자료=금융감독원)
금감원에 따르면 롯데손보는 지난해 킥스 비율 산출 시 위험 경감 기법을 적용하면서 적법한 문서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위험 경감 효과를 반영했습니다. 킥스 비율 산출 기준일로부터 5~14개월이 지난 시점에 위험 경감 기법 문서화한 후 위험 경감 효과를 인식해도 된다는 자체적인 판단으로 회계를 처리했습니다.
위험 경감 기법은 재보험, 파생상품, 신용위험 경감 수단(담보·상계·보증 등)을 활용해 요구 자본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보험사는 위험 경감 대상 자산의 특성과 전략, 평가 주기, 효과 측정 등을 체계적으로 문서화해야 합니다.
롯데손보는 또 무·저해지 보험상품의 해약률에 금융당국이 권고한 '원칙 모형'이 아닌, 일반형 보험 상품과 동일하게 적용해 '예외 모형'을 반영했습니다. 예외 모형은 경과 기간 해지율을 0%로 수렴하는 구간을 원칙 모형보다 완만하게 떨어지도록 낙관적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무·저해지 보험은 보험 기간 해지 시 해약 환급금이 없는 상품인 만큼 경과 기간별 해약률 및 누적 해약률을 일반형 상품보다 낮게 가정해야 합니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보험사들이 경험 통계 부재를 이유로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을 낙관적으로 적용하자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을 도입, 당해 결산 때부터 원칙 모형을 마련해 적용시켰습니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결산 당시에도 업계에서 유일하게 원칙 모형이 아닌 예외 모형을 적용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만일 본래 규정대로 위험 경감 효과를 반영하면 롯데손보 킥스 비율은 지난해 6월 말 공시된 173.1%에서 26.3%p 하락한 146.8%로, 작년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를 하회합니다. 여기에 원칙 모형을 적용할 경우 킥스 비율은 94.81%로 법정 기준인 100%마저 밑돌게 됩니다.
대주주 조기 상환 리스크 회피 의심
일각에서는 롯데손보가 채권단에 빌린 인수 자금을 조기상환해야 하는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위와 같은 자의적 해석과 산출 오류를 동원해 킥스 비율 산출을 부풀렸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빅튜라는 자체적인 조달과 내부 신용공여 등으로 자금을 모아 2023년 7월 롯데손보를 인수했습니다. 앞서 2019년 10월 롯데손보를 인수한 JKL파트너스가 적기에 엑시트(투자금 회수)하지 못하면서 빅튜라를 앞세워 표면적으로 대주주만 변경했습니다. 사모펀드 시장에서 적절한 엑시트 시점은 5년입니다.
JKL파트너스는 빅튜라를 통해 추가로 유입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인수금융으로 차환(리파이낸싱)에 나섰습니다. 이를 위해 빅튜라는 2024년 10월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등 국내 금융기관을 상대로 주식근질권 설정 계약을 맺고 4650억원을 빌렸습니다.
초기 EOD 조건은 '주식가치가 대출금의 125% 이상 유지'였으나 계약 당시 롯데손보 주가가 이미 하락한 상태라 EOD가 예상보다 빠르게 발동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에 빅튜라는 계약일로부터 약 한 달 뒤에 EOD 조건을 '킥스 비율 125% 이상 유지'로 변경했습니다.
조기상환 위험 대신 킥스 비율 관리를 택한 것입니다. 통상 보험사 거래(딜)에 차주 준수 사항(커버넌트)으로 킥스 비율이 동반되고 있어 무리한 조건 변경은 아니었습니다. 이로써 채권단은 롯데손보 킥스 비율이 규정치에 미달할 경우에만 대출 만기 이전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를 두고 채권단에 빌린 인수 자금을 조기상환해야 하는 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움직였다는 시각이 제기됩니다. 자의적 해석과 해약률 산출 오류가 아니었다면 빅튜라는 채권단으로부터 돈은 빌릴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으나, 킥스 비율을 부풀려 문제없이 대출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에 인수된 이후 보험사 본연의 업무를 개선시켜 대규모 금융을 일으키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대부분 롯데손보 경우처럼 후행 리파이낸싱을 통해 기업가치를 회복시켜 엑시트하는 전략을 쓴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자의적 해석’ 두고 롯데손보-금감원 이견
롯데손보는 금감원이 지적한 자의적 해석은 킥스 비율 산출 기준일과 문서화 시점의 간극을 지적한 것으로, 킥스 비율 산출 오류나 부풀리기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금감원은 2023년 12월 말부터 2024년 9월까지의 킥스 비율에 그간 지적해오지 않았으며, 대주주가 리파이낸싱에 나설 때 채권단도 해당 기간의 킥스 비율을 인정했습니다.
나아가 대주주 빅튜라가 대출 조기상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킥스 비율을 부풀렸다는 의혹에 대해 롯데손보가 공시한 킥스 비율 등 경영지표를 가지고 대주주가 자체적으로 리피아낸싱 여부를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감독당국은 킥스 비율 부풀리기가 맞다고 재확인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킥스 비율 산출식 자체를 건드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보험업 감독 업무 시행 세칙에선 시장 위험액을 산정할 때 위험 경감 효과를 내기 위해 사전에 위험관리위원회 승인을 받아야만 위험 경감 효과를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됐으나, 롯데손보는 문서화 작업을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위험 경감 기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해석해 킥스 비율을 부풀린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킥스 비율 산출과 관련해 롯데손보가 재공시로 수정 여부를 확인한 상태는 아니다"라며 "보완 작업은 6개월 내 보고해야 하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킥스 비율에 대한 대주주 의혹에 대해선 "사실 기반으로 해석을 더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롯데손해보험 사옥. (사진=롯데손해보험)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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