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산 없는 기후정책은 없다?
2025-09-05 06:00:00 2025-09-05 06:00:00
“예산 없는 기후정책은 없다”. 지난 6월 새 정부에 기후 재정 방향을 제안하는 기자간담회의 제목이었던 이 말은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예산이 있어야 하니, 정책과 예산은 한 묶음이어야 한다. 정책을 추진하고 목표를 달성하기에 예산이 부족할 수는 있으나 예산 없는 정책은 존재할 수 없다. 기후 재정이 부족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였겠으나 예산 없는 기후정책은 없다는 말은 그냥 당연한 소리의 반복이었다. 기후정책도 있고, 예산도 있다. 다만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온실가스를 줄이며 탄소중립을 달성하기에 정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됐다. 
 
정부 예산이 부족하다면, 현재 재정은 어느 정도인지, 얼마나 더 필요한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2023년 수립된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작성된 1쪽 분량의 재정투자 계획만으로 이를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탄소중립 지원을 위해 5년간(2023~2027년) 총 89.9조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지만, 어떤 사업에 얼마나 쓰이는지, 실제 사용됐는지, 그 효과는 어떠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어떠한 정보도 현재까지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마저도 2024년에는 감세 및 세수 축소 등에 따른 예산 조정으로 관련 예산이 20% 이상 삭감돼 국비 매칭 사업이 대부분인 지자체의 기후 대응 사업에도 큰 차질이 생겼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세계 GDP의 약 5%를 투자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예산은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서'에 따르면 12조원 수준으로 한국 GDP의 약 0.5%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재명정부 들어 기후위기 대응 예산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안)을 보면,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 향후 5년간(2026~2030년) 7조원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달성하기에는 여전히 매우 부족한 수준이다. 
 
최근 발표된 내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에 따르면, 기후정책 중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2025년(8973억원) 대비 3730억원(42%) 증가한 1조2703억원으로 편성됐다. ‘재생에너지에 역대 최대 편성’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큰 폭의 증가는 현재로서는 지난 정부 때의 대폭 감소를 회복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2022년에 1조2657억원이었던 관련 예산은 2023년에 1조490억원, 2024년에는 6054억원 수준까지 크게 줄었다. 2026년 들어서야 4년 만에 2022년 수준으로 회복하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정부 예산 구조는 이러한 목표 및 방향과는 상반된다. 화석연료에는 ‘패널티’, 재생에너지에는 ‘인센티브’가 필요하지만 여전히 화석연료에 막대한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지난 정부의 연평균 화석연료 보조금은 12조9000억원으로, 재생에너지 보조금 대비 10배 이상에 달했다. 국제사회는 이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다. G7 국가들은 2025년까지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 철폐를 선언했고, 각국은 석탄 채굴 보조금 폐지, 석탄화력발전소 보조금 종료 및 폐쇄, 화석연료 난방 보조금 폐지, 석유 및 가스 생산에 대한 수출 보증과 세금 감면 중단 등을 법제화하고 있다. 
 
정부는 탄소중립 국가로서의 국제적 위상 제고와 기후 재정의 일관성 확보를 위해 임기 내 화석연료 보조금의 단계적 폐지 선언과 함께 개편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탄소중립 계획과 정합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부문별 화석연료 보조금을 재검토하고 재생에너지 및 전기화 기술로의 전환을 유도해야 한다. 현행 '온실가스 감축인지 예산제'는 온실가스 감축 사업만 작성하고 있는데, 이를 배출 사업을 포함하는 ‘온실가스 인지 예산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감축 사업과 배출 사업의 전체 예산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서 관련 예산을 개편할 수 있을 것이다. 
 
탄소중립 정책이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제는 재정 투자 목표와 조달 계획, 경제 영향과 성과 평가 계획을 포함하는 ‘기후 재정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기후 재정 계획은 관련 위원회의 주도하에 수립하고, 관련 부처와 예산 부처, 시민참여 거버넌스와 협의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해당 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위한 예산 프로세스의 개혁이 필요하다. 기후 재정 계획이 국가재정 운영 계획 및 중장기 재정 계획에 반영되도록 하고 예산 편성 과정에서 관련 위원회와 협의를 거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예산 없는 기후정책은 존재할 수 없다. 기후 재정 계획이 필요한 이유다. 
 
권승문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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